요네쿠라 마사타다(米倉昌尹, 1637~1699)는 일본 에도 시대 전기부터 중기까지 활동한 하타모토(旗本)이자 다이묘(大名)이다. 에도 막부에서 와카도시요리(若年寄)를 역임했으며, 무사시 가나자와 번(武蔵金沢藩)의 번주와 시모쓰케 미나가와 번(下野皆川藩)의 초대 번주를 지냈다. 무쓰우라 번 요네쿠라 가(六浦藩米倉家)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가문 배경
요네쿠라 가문은 원래 가이 국(甲斐国)의 다케다 가문(武田氏)의 가신이었다. 다케다 가문이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멸망한 후, 요네쿠라 가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1603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막부 체제에서 하타모토로 복무하게 되었다. 마사타다는 하타모토였던 요네쿠라 마사즈미(米倉昌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애와 관직
요네쿠라 마사타다는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徳川綱吉)의 총애를 받아 관직에서 빠르게 승진했다. 1696년에는 와카도시요리(若年寄, 젊은 중신) 지위에 도달했다. 이 관직에 수반되는 추가 수입 덕분에 그의 영지는 다이묘 자격 기준인 1만 석(石)을 넘어섰으며, 그는 다이묘로 승격되었다.
1696년부터 1699년까지 무사시 가나자와 번의 번주를 지냈으며, 이후 고즈케 국(上野国)의 미나가와 번으로 전봉되어 그 초대 번주가 되었다. 그는 1699년에 사망했다.
가계의 단절과 후계
마사타다의 직계는 그의 손자 요네쿠라 마사테루(米倉昌照, 1683~1712) 대에서 단절되었다. 이후 야나기사와 요시야스(柳沢吉保)의 아들이 요네쿠라 가문의 가독을 이어받아 요네쿠라 다다스케(米倉忠仰)라는 이름을 취했고, 1722년에 무쓰우라 번으로 복귀 전봉되었다. 이로써 요네쿠라 가문은 무쓰우라 번의 번주 가문으로서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졌다.
역사적 의의
요네쿠라 마사타다는 하타모토에서 다이묘로 승격된 사례로, 도쿠가와 막부가 신뢰할 만한 하타모토를 승격시켜 중앙 통제를 강화하려 했던 정책의 대표적 예시로 평가된다. 그의 가문이 설립한 무쓰우라 번은 1871년 폐번치현(廃藩置県)까지 존속했다.
요네쿠라 마사타다는 일본 역사 인물로서 에도 시대 전기 막부 정치와 번 제도 연구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지며, 한국어·영어·일본어 위키백과 및 여러 역사 관련 자료에서 그 행적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