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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흥종

요 흥종(遼 興宗, 1016년 4월 3일~1055년 8월 28일)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대요)의 제7대 황제이다. 휘는 야율종진(耶律宗眞)이며, 거란 이름은 야율지골(耶律只骨)이다. 시호는 신성효장황제(神聖孝章皇帝)이며, 능호는 영흥릉(永興陵)이다. 재위 기간은 1031년부터 1054년까지이다.

요 성종(성종 야율융서)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생모는 궁녀 출신의 소누근(훗날 흠애황후로 추존)이다. 다만 성종의 정비인 인덕황후에게 친자식처럼 길러졌다. 1021년 6세의 나이에 황태자에 책봉되었고, 1031년 부친 성종이 사망하자 즉위하였다.

즉위 초기에는 생모인 흠애황후 소누근이 섭정하며 권력을 장악하였고, 흠애황후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북부 재상 소착복과 인덕황후의 형제 소필적 등을 무고하게 하였다. 흥종은 인덕황후에 대한 효심이 깊어 그녀를 구하려 하였으나, 흠애황후는 인덕황후를 상경(현 내몽골 자치구)으로 추방한 뒤 억지로 자결하게 하였다. 1034년 흠애황후가 흥종을 폐위하고 다른 아들을 왕위에 세우려 하자, 흥종은 이를 사전에 알아내고 생모를 귀양 보냈다.

흥종의 치세 동안 요나라는 내부 정치가 부패하고 군대가 해이해지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서하를 여러 차례 공격하고 북송과도 교전하며 군사적 압박을 가하였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은 높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였고, 흥종은 불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사치를 일삼아 국력을 소모시켰다. 이 같은 쇠퇴는 이후 1125년 요나라가 금나라에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한편 흥종은 고려와의 외교 관계도 유지하였으며,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존호를 받았다. 1032년에 '문무인성소효황제', 1042년에 '총문성무영략신공예철인효황제', 1054년에 '흠천봉도우세흥력무정문성성신인효황제'로 존호를 가상하였다. 사용한 연호로는 경복(景福, 1031년~1032년)과 중희(重熙, 1032년~105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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