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프랑수아 비도크(Eugène François Vidocq, 1775년 7월 24일~1857년 5월 11일)는 프랑스의 범죄자 출신 범죄학자이자 탐정이다. 프랑스 북부 아라스(Arras)에서 제빵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청소년기부터 도난, 위조, 탈영 등 여러 범죄 행위로 수감과 탈옥을 반복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809년, 34세가 되던 해에 체포된 비도크는 경찰에 밀고자로서 협력하기 시작했고, 1811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범죄 수사 기관인 쉬르테(Sûreté)를 창설하여 초대 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전과자 출신의 요원들을 기용하여 사복 수사와 잠복 근무를 도입했으며, 범죄자 식별을 위한 카드 색인 시스템, 신발 자국의 석고 주형 제작, 탄도학적 증거 분석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과학 수사 기법을 최초로 시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1817년에는 루이 18세로부터 공식 사면을 받았다.
1827년 쉬르테에서 사임한 후 회고록을 출간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1833년에는 세계 최초의 사설 탐정 사무소인 '르 뷔로 데 랑세뉴망(Le bureau des renseignements)'을 설립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법적 분쟁에 휘말렸으나, 생애 전반에 걸쳐 약 16,000명에서 20,000명에 달하는 범죄자를 체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도크의 극적인 삶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장 발장과 자베르 경감), 오노레 드 발자크의 보트랭(Vautrin) 캐릭터, 알렉상드르 뒤마, 에드거 앨런 포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또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와 애거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창작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1857년 5월 11일, 파리 자택에서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무덤은 현재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으며, 사후 11명의 여성들이 각자 비도크가 남긴 유언장을 제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0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미제 사건 해결을 목표로 하는 '비도크 협회(Vidocq Society)'가 창설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