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카리에르(Eugène Carrière, 1849년 1월 16일 ~ 1906년 3월 27일)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이자 석판화가이다. 본명은 외젠 아나톨 카리에르(Eugène Anatole Carrière)이다.
개요
외젠 카리에르는 19세기 말(벨 에포크 시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상징주의 화가로, 거의 단색에 가까운 갈색 팔레트와 몽환적이고 아련한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매우 가까운 친구였으며, 그의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청색 시대(Blue Period)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시인 폴 베를렌, 스테판 말라르메, 샤를 모리스 등 당대 문인들과도 교류가 깊었다.
생애
1849년 1월 16일 프랑스 구르네쉬르마른(Gournay-sur-Marne)에서 보험 판매원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성장하며 상업 석판화가로 훈련을 받았다. 1868년 파리를 방문하여 루브르 박물관에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밑에서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했으나, 보불전쟁(1870~1871)으로 학업이 중단되었고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1872~1873년에는 쥘 셰레(Jules Chéret)의 작업실에서 일했다. 1878년 처음으로 살롱에 참가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1879년 소피 데몽소(Sophie Desmonceaux)와 결혼하여 일곱 자녀를 두었다.
1880년부터 1885년까지 세브르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 평생 지속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1884년 살롱에서 그의 작품이 명예로운 언급을 받았고, 영향력 있는 미술 비평가 로제 마르크스(Roger Marx)가 그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국립미술협회(Société Nationale des Beaux-Arts)와 오톤 살롱(Salon d'Automne)의 창립 멤버였으며, 아카데미 드 라 팔레트(Académie de La Palette)에서 미술 교사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1898년에는 아카데미 카리에르(Académie Carrière)를 설립하여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등 많은 젊은 예술가들을 가르쳤으며, 이곳은 이후 야수파(Fauvism)의 온실이 되었다.
1906년 3월 27일 파리에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조르주 클레망소부터 젊은 프랑시스 피카비아까지 파리 문화계의 많은 인사들이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로댕은 추도사를 직접 낭독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자녀들에게 남긴 "Aimez-vous avec frénésie."(격정적으로 서로 사랑하라)였다.
화풍과 영향
카리에르는 초기에는 동시대 화가 장자크 에네르(Jean-Jacques Henner)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거의 단색에 가까운 갈색 팔레트와 짙고 안개 자욱한 분위기 속에서 형상이 드러나는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켰다. 그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깊게 하여 인물을 음영 속에 녹여내는 듯한 표현이 특징이며, 이로 인해 '그림자의 대가(Master of Shadows)'로 불리기도 한다.
모성(母性)을 주제로 한 작품이 특히 유명하며, 아픈 아이(The Sick Child, 1885), 모성(Maternity) 등 가족을 소재로 한 그림에서 부드럽고 단아한 정서를 표현했다. 그는 가족을 인류의 축소판으로 간주하여 보편적인 인간애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런던 테이트, 내셔널 갤러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작품
- 《아픈 아이》(The Sick Child, 1885)
- 《폴 베를렌의 초상》(Portrait of Paul Verlaine, 1890)
- 《폴 고갱의 초상》(Portrait of Paul Gauguin, 1891)
- 《모성》(Maternity, 1892)
-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Christ on the Cross, 1897)
- 《어머니들》(The Mothers,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