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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슈엘러

외젠 파울 루이 슈엘러(Eugène Paul Louis Schueller, 1881년 3월 20일 ~ 1957년 8월 23일)는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기업가로, 세계 최대의 화장품 기업 로레알(L'Oréal)의 창립자이다.

생애 및 배경

슈엘러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알자스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4년 파리 응용화학연구소(현 Chimie ParisTech)를 졸업하고 소르본 대학에서 실험실 조교로 근무하였다. 1907년, 한 이발소 주인의 요청으로 합성 헤어 염색약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이 제품을 '오레알(Oréale)'이라 명명하였다. 1909년에는 '프랑스 무해 모발 염색 회사(Société Française de Teintures Inoffensives pour Cheveux)'를 설립하였고, 이 회사가 이후 로레알로 발전하였다.

기업 활동

슈엘러는 혁신적인 헤어 컬러 포뮬러를 개발하여 파리 미용실에 판매하였고, 1934년에는 최초의 비누 없는 샴푸인 '도프(Dop)'를, 1935년에는 최초의 선스크린 오일인 '앙브르 솔레르(Ambre Solaire)'를 출시하였다. 그는 연구개발과 마케팅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도입하였으며, 비례 임금제 개념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1939년 회사명을 로레알(L'Oréal)로 변경하였다.

파시즘 단체 연루 논란

슈엘러는 1930년대 프랑스의 극우 파시즘 성향 비밀 결사 단체인 '라 카굴(La Cagoule)'에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로레알 본사에서 이들의 회합을 주선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라 카굴은 반유대주의, 반공주의 성향의 폭력적 단체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시기에는 비시 정권의 협력을 지지하였다. 슈엘러는 1941년 저서 《경제의 혁명(La révolution de l'économie)》에서 나치즘에 대한 동조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전후 그는 경제적·정치적 협력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증거 부족 등으로 기소가 최종 기각되었다. 전후에도 로레알은 라 카굴 출신 인사들을 임원으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가족 및 유산

슈엘러의 외동딸 릴리안 베탕쿠르(Liliane Bettencourt)는 한때 세계 최고의 여성 부호로 알려졌으며, 그의 손녀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메이예르(Françoise Bettencourt Meyers)는 로레알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슈엘러는 1957년 파리에서 사망하였으며, 로레알의 클리시 본사 건물은 '외젠 슈엘러 센터(Centre Eugène Schueller)'로 명명되어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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