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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본명: 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1798년 4월 26일 프랑스 파리 근교 샤랑통생모리스(현 생모리스)에서 태어났으며, 1863년 8월 13일 파리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들라크루아는 피에르나르시스 게랭(Pierre-Narcisse Guérin)에게 미술을 배웠으며,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메두사호의 뗏목》에 큰 영향을 받아 낭만주의에 경도되었다. 그는 신고전주의의 엄격한 형태와 외곽선의 명료성보다는 루벤스와 베네치아 르네상스 화가들에게서 색채와 운동감을 강조하는 기법을 발전시켰다. 그의 표현적인 붓놀림과 색의 광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이후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822년 《단테의 배》(La Barque de Dante)로 살롱에 데뷔하였고, 1824년 그리스 독립 전쟁을 소재로 한 《히오스섬의 학살》(Scène des massacres de Scio)을 발표하여 낭만주의의 기수로 자리매김하였다. 1827년에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La Mort de Sardanapale)을, 1830년에는 7월 혁명을 기념한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을 제작하였다. 1832년 모로코를 여행한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더욱 풍부한 색채와 이국적인 소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알제의 여인들》(Femmes d'Alger dans leur appartement, 1834)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는 《묘지의 고아》(1824), 《미솔롱기의 폐허 위에 선 그리스》(1826), 《어미 호랑이와 장난치는 새끼 호랑이》(1831), 《프레데리크 쇼팽의 초상》(1838),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1841) 등이 있다. 그는 프레데리크 쇼팽, 조르주 상드, 샤를 보들레르 등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였으며, 일기와 평론, 편지 등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생애 후반에는 대형 벽화 제작에도 몰두하였으며, 1863년 파리에서 사망하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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