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몽골 점령은 중화민국 북양정부(북양군벌)가 1919년 10월부터 1921년 3월까지 외몽골(현재의 몽골국 영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는 청나라 멸망 이후 사실상 독립 상태였던 복드 칸국을 중화민국이 재편입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배경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붕괴하자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고 복드 칸을 군주로 하는 복드 칸국을 수립하였다. 1915년 캬흐타 협정을 통해 러시아 제국, 중화민국, 복드 칸국 3자 간에 외몽골이 중화민국의 종주권 아래 자치 지역으로 남는 것이 합의되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면서 외몽골을 보호해 줄 세력이 사라졌고, 이 틈을 타 중화민국 북양정부가 외몽골 재점령을 추진하였다.
침공과 점령
당시 중화민국 국무총리였던 돤치루이(段祺瑞)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명목으로 창설한 '참전군'을 서북변방군으로 개명하여 외몽골 원정에 투입하였다. 1919년 10월, 친일파 환계군벌(안휘군벌)의 지도자 쉬수정(徐樹錚)이 4,000명의 선봉대를 이끌고 외몽골 수도 우르가(현 울란바토르)에 진입하여 저항 없이 점령하였고, 이후 1만 명의 병력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쉬수정은 복드 칸과 몽골 지도자들에게 자치권 철폐를 강요하였고, 1919년 11월 22일 북양정부는 외몽골의 자치 철폐를 공식 선언하였다.
점령기의 실상
점령 기간 동안 중국군은 몽골인들에 대한 약탈과 살해를 자행하였으며, 복드 칸을 비롯한 몽골 지도자들에게 중화민국 대총통의 사진 앞에서 고두(叩頭)하도록 강요하는 등 굴욕적인 의식을 강행하였다. 이는 몽골인들의 강한 반중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쉬수정은 몽골에 과거 청나라 시절의 채무까지 소급하여 막대한 배상을 요구하여 몽골 유목민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였다.
점령의 종식
1920년 7월, 중국 본토에서 안직전쟁(직예군벌과 환계군벌 간의 내전)이 발발하자 쉬수정은 대부분의 병력을 중국 내전에 투입하기 위해 철수시켰다. 이로 인해 몽골에는 소수의 중국군만 잔류하게 되었다. 1920년 10월, 러시아 내전에서 패퇴한 백군(반볼셰비키 군대)의 로만 폰 웅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이 8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몽골로 진격하였다. 1921년 2월, 웅게른의 아시아 기마사단은 우르가에 주둔한 중국군을 격파하고 복드 칸을 복위시켰다. 이후 소련 붉은 군대와 담딘 수흐바타르가 이끄는 몽골 인민당군이 연합하여 웅게른을 격파하였고, 1921년 7월 몽골 인민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로써 외몽골 점령은 종료되었고, 1924년 몽골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영향
외몽골 점령은 북양정부가 수행한 유일한 해외 군사 원정이었으며, 간접적으로 돤치루이와 환계군벌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중국은 1945년 몽골 독립 국민투표 이후 1946년 1월 몽골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였으나, 1953년 국공내전에서 소련이 중국공산당을 지원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인정을 철회하였다. 이후 2002년 중화민국(대만) 정부는 몽골을 다시 독립국가로 인정한다고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