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도(王熙道, 1711년 9월 28일 ~ 1782년 1월 26일)는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자(字)는 여심(汝心)이며,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출신 배경
왕희도는 경기도 풍덕군 덕수 출신으로, 고려 신종의 차남인 양양공 왕서(王緖)의 19대손이다. 고조부는 통훈대부 왕신남, 증조부는 증장악원정에 추증된 왕갑생, 할아버지는 증참의 왕시익, 아버지는 증참판에 추증된 왕태운이다. 어머니는 밀양 박씨로 박신의 딸이다. 조선 건국 이후 태조 때 수원에서 처형된 13대조 왕거와 그 형인 남평군 왕화의 기록이 조선 태조실록에 나타난다. 이후 약 5대조인 왕춘경의 대에 이르러 경기도 풍덕군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직 이력
왕희도는 무과에 급제했으나, 정확한 합격 기록은 실전되어 합격 일시가 확인되지 않는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중경지》(中京誌)의 무과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확인되나 합격 일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1747년(영조 23) 5월 29일 삼삼파만호(森森波萬戶)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6월 10일에는 아버지의 나이가 73세임을 들어 체직(遞職)을 청원했으며, 병조의 상주에 따라 영조가 이를 윤허하였다.
1770년(영조 46) 6월 20일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재직 중 상가(賞加)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했으나, 이때 포상의 구체적인 사유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해 7월 4일 병비의 천거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으며, 이 관직이 그의 최종 관직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의 특징
왕희도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승정원일기》에 그의 행적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형제자매로는 형 왕세도와 해주오씨 오중필에게 출가한 누이가 있었으며, 숙부 왕태봉은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를 역임했다고 전한다. 그의 일가의 산소는 경기도 풍덕군 남면·북면 일대와 덕수진봉산 일대에 조성되었다.
한자 정보
왕희도의 한자는 王(임금 왕) 熙(빛날 희) 道(길 도)로 표기된다. 참고로 동명의 한자음이 유사한 '왕회도'(王會圖)는 중국 당나라 화가 염립본이 그린 각국 사신도(使臣圖)의 명칭으로, 이는 동음이의어이며 본 인물과는 관련이 없다.
(주요 출처: 《승정원일기》, 《여지도서》, 《중경지》, 한국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