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훙원(王洪文, Wang Hongwen, 1935년 12월 6일 ~ 1992년 8월 3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문화대혁명 시기 활동한 사인방(四人帮, Gang of Four)의 최연소 구성원이다.
생애 초기 왕훙원은 1935년 만주국 신징(현 지린성 창춘)의 빈농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정규 교육은 3개월 남짓 사숙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1951년 4월 한국 전쟁에 파병된 중국인민지원군에 입대하여 제27군 제80사단에서 호위병과 통신병으로 복무하였고, 1956년 제대 후 상하이 면화 제17공장의 보위과 간부가 되었다.
정치적 부상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6년 11월, 상하이에서 조반파(造反派)를 조직하여 '상하이 노동자 혁명 조반 총사령부'를 결성하고 총사령관에 올랐다. 1967년 상하이시 혁명위원회 부주임이 되었고, 1969년 중국공산당 제9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73년 제10차 당대회에서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다음가는 서열로 주목받았으며,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부주석에 올랐다. 마오쩌둥은 그를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며 칭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포와 재판 마오쩌둥 사망 직후인 1976년 10월, 화궈펑의 명령으로 장칭,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등 사인방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77년 7월 중국공산당 제10기 3차 전원회의에서 당에서 영구제명되고 모든 직함을 박탈당했다. 1981년 1월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원은 그에게 무기징역형과 정치적 권리 영구 박탈을 선고하였다.
옥중 생활과 사망 이후 계속 복역하다가 1992년 8월 3일 베이징의 옥중에서 56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의 부인 추이진디(崔根娣)는 이혼하지 않고 해마다 딸을 데리고 면회를 갔다고 전해진다.
평가 왕훙원은 문화대혁명 시기 급부상한 인물로, 노동자 출신이라는 배경 덕분에 마오쩌둥의 신임을 받았으나, 사인방의 일원으로서 문화대혁명 이후 역사적 평가에서 부정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