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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준 (서진)

왕준(王濬, ?~286)은 중국 서진(西晉) 초기의 무장이다. 자는 시우(士佑)이고, 태원군 진양현(太原郡 晋陽縣, 현 산시성 타이위안시) 출신이다.

주요 생애 및 활동 조위(曹魏) 말기에 관직에 나갔으며, 양주자사(揚州刺史) 등을 역임했다. 서진이 건국된 후에도 중용되어 익주자사(益州刺史),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 등에 임명되었다.

오나라 정벌 왕준의 가장 큰 업적은 280년(태강 1년) 오나라 정벌에 앞장선 것이다. 그는 익주자사로 부임한 후 독단적으로 오나라 정벌을 준비했다. 촉 땅의 목재를 베어 대규모 함선을 건조하고, 수군을 양성하여 양자강을 따라 동진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진나라 조정 일각에서는 그의 독단적 행동을 우려했으나,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은 이를 묵인하고 지원했다.

280년 정월, 왕준은 수군을 이끌고 양자강을 하류로 내려가며 오나라의 요새인 성도(建平), 서릉(西陵), 무창(武昌) 등을 연파했다. 특히 철퇴(鐵騎)를 배에 싣고 강을 건너는 전술과, 뗏목에 불을 붙여 오군의 쇠사슬 방벽을 녹여 끊는 계책으로 유명하다. 그는 가장 먼저 오의 수도 건업(建業, 현 난징) 인근인 각리(皁里)에 도달하여 오왕 손호(孫皓)의 항복을 받아내는 결정적 공을 세웠다.

말년과 평가 오나라 평정 공로로 상주(常州) 자사, 정동대장군, 도독양주제군사(都督揚州諸軍事)에 봉해졌으며, 강도현개국후(江都縣開國侯)에 봉해졌다. 286년(태희 원년) 사망했고, 시호는 무(武)이다.

역사적으로 《진서(晉書)》 등에 열전이 실려 있으며, 촉의 자원을 활용한 치밀한 준비성과 대담한 수전 전개로 진나라의 삼국 통일을 완성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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