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왕전 (전국)

왕전(王翦, 생몰년 미상)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장군이다. 백기와 더불어 전국시대 진나라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진 시황제(秦王政) 때 조나라·연나라·초나라 등을 공격해 차례로 멸망시키며 중국의 통일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왕전이 진나라의 주변국 여섯 나라를 평정하고 전국시대를 종식시켜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만든 명장이라고 평가하였다.

출신

왕전은 빈양(頻陽) 동향(東鄕)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병법을 좋아했으며 진 시황제를 섬겼다. 그의 아들 왕분(王賁)과 손자 왕리(王離)도 3대에 걸쳐 진나라의 장수로 활약하였다.

주요 활동

기원전 236년(진시황 11년), 왕전은 환의(桓齮)·양단화(楊端和) 등과 함께 조나라의 업(鄴)을 공격하여 9성을 빼앗았다. 기원전 229년(진시황 18년), 진나라가 대규모로 조나라를 공격할 때 왕전은 출전하여 정형(井陘)을 함락시키고, 조나라 명장 이목(李牧)과 대치하였다. 왕전은 조왕이 총애하던 신하 곽개(郭開)에게 뇌물을 주어 이목을 모함하게 하였고, 이목이 숙청된 후 기원전 228년 조나라를 함락시켰다.

기원전 227년, 연나라 태자 단이 자객 형가(荊軻)를 보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왕전은 신승(辛勝)과 함께 연나라를 공격하여 역수(易水) 서쪽에서 연군을 격파하고 도읍 계성(薊城)을 점령하였다.

초나라 정벌

진시황이 초나라 정벌에 필요한 병력을 물었을 때, 젊은 장수 이신(李信)은 "2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답한 반면, 왕전은 "60만 명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진시황이 왕전은 늙어 겁이 났다고 판단하고 이신에게 20만 군사를 맡겨 출전시켰으나, 이신은 초나라 군대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였다. 이후 진시황이 직접 빈양으로 찾아가 사과하며 왕전에게 출전을 요청하였다. 왕전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로 출정하여 보루를 쌓고 오랜 시간 대치하다가 초군이 지친 틈을 타 공격하여 초나라 장군 항연(項燕)을 죽이고, 기원전 224년부터 223년에 걸쳐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이후 왕전은 강남(江南) 지역을 평정하고 월군(越君)을 항복시켰다.

기원전 221년, 왕전의 아들 왕분이 제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면서 전국시대가 종결되었다.

말년과 후대 평가

천하통일 이후 왕전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이 낭야(琅邪)를 순행할 당시 수행 대신 명단에는 아들 왕분과 손자 왕리의 이름이 보이지만 왕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사마천은 《사기》 권73 〈백기왕전열전〉에서 왕전과 백기의 열전을 함께 엮어 "진나라의 장수가 되어 여섯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당시에 왕전은 숙장(宿將)이 되었으니 진시황도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극찬하면서도, 진나라의 덕을 세워 근본을 다지지 못하고 구차하게 마쳤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남조시대 주흥사(周興嗣)는 《천자문》에서 "기전파목(起翦頗牧) 용군최정(用軍最精)"이라 하여 백기·왕전·염파·이목을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았다.

후손

왕전의 아들은 통무후(通武侯) 왕분, 손자는 무성후(武城侯) 왕리이다. 《신당서》에 따르면 왕리의 아들 왕원(王元)이 진나라 멸망 이후 전란을 피해 낭야로 이주했다고 전하며,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에 명문가로 이름을 떨친 낭야 왕씨(瑯邪王氏) 집안이 왕전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한서》 왕길전에는 왕리와 왕길 사이의 관계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신당서》의 계보에 대해서는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참고 자료

  • 《사기》 권73 〈백기왕전열전〉
  • 《사기》 권6 〈진시황본기〉
  • 《전국책》 권21 〈조책〉
  • 《천자문》
  • 《신당서》 권72 〈재상세계표〉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