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王襄, ? ~ 기원전 3년)은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관료이자 외척이다. 위군(魏郡) 원성현(元城縣) 위속리(委粟里) 출신이며, 대장군(大將軍) 왕봉(王鳳)의 아들이다.
양삭(陽朔) 3년(기원전 22년)에 부친 왕봉의 뒤를 이어 양평후(陽平侯)에 봉해졌다. 홍가(鴻嘉) 원년(기원전 20년)에는 위위(衛尉)에 임명되었고, 영시(永始) 2년(기원전 15년)에는 태복(太僕)에 임명되었다. 태복은 전한 시기 구경(九卿)의 하나로서 궁중의 마차와 말 사육을 관장하는 관직이었다. 그러나 태복으로 재임한 지 약 3년 만인 기원전 12년에 질병으로 인해 관직에서 면직되었다.
건평(建平) 4년(기원전 3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희(釐)로 추증되었다. 그의 작위는 아들 왕잠(王岑)이 계승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漢書) 권18 「외척은택후표」와 권19하 「백관공경표」에 기록된 바에 근거한다. 현재 전해지는 사료에서는 왕양의 생년이나 출생 연대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며, 그 외의 구체적인 정치적 행적은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