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王安, ? ~ 21년)은 중국 전한 말기부터 신나라까지 활동한 인물로, 신나라 황제 왕망(王莽)의 셋째 아들이며, 모후는 효목황후 의춘씨(宜春氏)이다. 본관(출신지)은 위군(魏郡) 원성현(元城縣)이다.
전한 원시 4년(4년), 왕안은 포신후(褒新侯)에 봉해졌다. 이후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한 후, 시건국 원년(9년)에는 신가벽(新嘉辟)에 봉해졌고, 지황 원년(20년)에는 신천왕(新遷王)으로 봉해졌다.
그러나 왕안은 본래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서》 왕망전에 따르면 "왕안은 정신이 몹시 아득하고 멍청하니, 이에 왕림(왕망의 넷째 아들)을 황태자로 삼고 왕안을 신가벽으로 삼았다"(安頗荒忽, 乃以臨為皇太子, 安為新嘉辟)고 기록되어 있다. 즉, 왕안이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넷째 아들 왕림이 태자로 책봉되고, 왕안에게는 신가벽이라는 작위가 내려진 것이다.
지황 2년(21년) 정월, 황후 의춘씨가 죽고 태자 왕림이 자결한 이후, 왕안 역시 병사하였다.
'신가벽(新嘉辟)'이라는 단어 자체는 왕안에게 부여된 작위명으로, 일반적인 한자어휘라기보다는 왕망이 창제한 신나라의 관작명 체계에 속하는 호칭이다. 이 외에 일상적인 어휘나 별도의 관용적 의미로 사용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