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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주둔군

「왕릉과 주둔군」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하근찬(河瑾燦, 1931~2007)이 쓴 단편소설이다. 1963년 『신작 15인집』에 발표되었다. 작가의 창작집 『왕릉과 주둔군』(1963)에도 수록된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농촌을 배경으로 전통적 가치와 외래 문화의 충돌을 다룬 전후(戰後)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줄거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예로부터 내려온 큰 왕릉이 있다. 왕족의 자손이라고 자처하는 박 첨지는 자신의 조상이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고, 상투를 쓰며 왕릉을 돌보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왕릉을 찾아가고, 누구라도 왕릉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느 날 박 첨지가 정성으로 돌보는 왕릉 옆에 미국에서 온 병정들(주둔군)이 주둔하기 시작한다. 미국 병정들은 왕릉 앞에서 음식을 먹고 방뇨를 하는 등 왕릉을 함부로 대하며, 왕릉 주변은 병정들의 밀회 장소로 바뀐다. 또한 미국 병정들에게 성 접대를 하는 양색시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의 고유한 관습과 분위기가 뒤흔들린다.

박 첨지는 왕릉의 훼손을 막기 위해 왕릉 주위에 담을 쌓자고 문중에 제의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사이 박 첨지의 딸 금례는 미국 문화에 점차 심취하여 미국 병정을 따라 가출한다. 시간이 흐른 뒤 금례는 좋은 옷차림으로 돌아오지만 옆에는 노란 머리와 노란 눈을 가진 혼혈아 아들이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박 첨지는 이를 경악하며 자리에 눕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란 머리 외손자가 왕릉 위에 올라가 혀를 내밀며 노는 모습을 보고 박 첨지는 소리를 지르며 혼절한다.

주제 및 상징

작품에서 '왕릉'은 전통적·민족적 가치와 조상숭배의 상징이며, '주둔군'은 전쟁과 함께 유입된 외래 문화를 상징한다. 두 요소의 대립을 통해 6·25전쟁 이후 전통 사회의 풍습과 가치 체계가 외래 문화의 유입으로 훼손되고 붕괴되는 양상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박 첨지의 노력이 왜소하게 그려지는 한편, 외래 문화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문학사적 위치

하근찬은 1957년 단편 「수난 이대」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그의 문학은 민중이 겪는 역사적 수난을 주로 다루었으며, 「왕릉과 주둔군」은 외래 문화의 이입으로 인한 문화적 충돌과 전통의 해체라는 문제의식을 다룬 전후 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진다. 이 작품은 중고등학교 국어 및 문학 교재에도 수록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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