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륜(王倫)은 중국 역사 및 문학에서 여러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동일한 한자 표기를 공유하지만 시대와 성격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 존재하며, 대표적인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수호전》의 등장인물 (소설 속 인물)
왕륜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가공 인물로, 별호는 백의수사(白衣秀士)이다. "백의수사"는 무관(無官)의 서생이라는 뜻이다. 그는 협객 집단이 형성되기 이전 옛 양산박(梁山泊)의 초대 수령이었다.
작중에서 왕륜은 과거에 낙제한 서생 출신으로, 친구 두천(杜遷)과 함께 양산박에서 산적이 되었고 이후 송만(宋萬), 주귀(朱貴) 등이 가세하여 약 800여 명을 거느리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 입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도량이 좁은 인물로 묘사된다. 임충(林沖)이 입산을 청했을 때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어 거부하려 했으며, 조개(晁蓋) 일행이 입산을 요청했을 때에도 식량 부족을 이유로 돈을 주어 쫓아내려 하였다. 결국 임충과의 충돌 끝에 왕륜은 임충에게 살해당하고, 조개가 새로운 양산박의 주인이 된다.
이처럼 작중에서 소인배로 그려지지만, 양산박이라는 천연의 요새를 발견하고 무뢰한 집단의 근거지를 만든 인물로 이야기 전개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북송 시기의 실제 인물 (역사적 반란 지도자)
왕륜은 북송(北宋) 인종(仁宗) 시기인 1043년(경력 3년) 5월에 군졸로서 수십 명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실존 인물이다. 그는 순검사 주진(朱鎭)을 살해하고 연호를 제정하여 관직명을 변경했으며, 밀주(密州)와 청주(靑州) 일대에서 활동했다. 이 역사적 인물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왕륜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청나라 시기의 백련교 지도자 (1774년)
왕륜(1774년 11월 1일 사망)은 1770년대 산둥성(山東省)에서 활동한 백련교(白蓮敎) 지도자이다. 그는 미륵불(彌勒佛)의 강림을 강조하는 종말론적 사상을 설파했으며, 무술과 의술에 능하여 추종자들에게 명상과 단식 등을 가르쳤다. 그의 집단은 "청수교(淸水敎)"로 알려졌으며 1774년까지 수천 명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1774년 10월, 왕륜은 자신이 미륵불의 환생이자 중국의 황제가 될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수장(壽張), 양곡(陽穀) 등의 도시를 함락하며 진격했으나, 린칭(臨淸) 공성전에서 청나라 군대에 패배하였다. 1774년 11월 1일, 포위된 왕륜은 생포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그의 반란은 수전 네이킨(Susan Naquin)의 저서 《Shantung Rebellion: The Wang Lun Uprising of 1774》 등에서 학술적으로 연구되었으며, 알프레트 되블린(Alfred Döblin)의 1916년 소설 《왕륜의 세 번의 도약》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4. 남송 시기의 사신 (1081–1144년)
왕륜은 남송(南宋) 시기 심주(深州) 출신의 관리이자 사신으로, 단명전 학사와 추밀원 부사를 역임하였다. 그는 북송 명재상 왕단(王旦)의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송과 금(金)나라 사이의 외교 사절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처럼 '왕륜'이라는 이름은 소설 속 인물, 북송의 반란 지도자, 청나라의 백련교 지도자, 남송의 사신 등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가진 여러 인물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에 대한 정보는 관련 문헌과 학술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