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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

왕관(王冠)은 왕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군주가 머리에 쓰는 관(冠)이다. 좁은 의미로는 왕이 쓰는 관을 가리키며, 더 넓게는 황제가 쓰는 제관(帝冠)이나 귀족이 쓰는 관을 포함하여 군주권과 존엄을 나타내는 머리 장식물 전반을 지칭하기도 한다.

개념과 상징

왕관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통치자의 권력, 존엄, 그리고 통치자와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영연방(Commonwealth) 국가들에서는 왕관이라는 말 자체가 개별 군주와 구분되는 군주제 또는 국가의 추상적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장학(紋章學, heraldry)에서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왕관이 특정 지위를 나타내는 도안 요소로 활용되며, 실제 물리적인 왕관을 보유하지 않은 군주국(예: 벨기에)도 문장학적 왕관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

왕관의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 하리아나(Haryana) 지역에서는 선사시대의 왕관이 발견된 바 있다. 왕관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이마띠(머리띠, diadem)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황제들이 착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로마 제국에도 도입되어 후대 로마 황제들이 사용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러 형태의 관이 사용되었는데, 상이집트의 흰 관(Hedjet), 하이집트의 붉은 관(Deshret), 두 왕국을 통합한 것을 상징하는 이중관(Pschent), 그리고 케프레시(Khepresh) 등이 대표적이다. 고전기 그리스·로마에서는 승리한 장군이나 운동 경기 우승자에게 월계수, 도금양, 올리브 등의 자연 소재로 만든 화환(wreath)이 수여되기도 하였다.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에서는 새 군주가 즉위할 때 종교적 권위가 군주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대관식(coronation)이 거행되었으며, 대관 예식에서 왕관은 종교적 승인을 받아 군주의 머리에 씌워졌다. 나폴레옹이 교황 비오 7세 앞에서 스스로 왕관을 써 자신을 직접 대관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절차가 사전에 합의된 것이었다.

동아시아와 한국의 왕관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면류관(冕旒冠)과 일본의 변관(弁冠) 등이 황제가 착용한 관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경우 신라 금관(경주 황남대총 발굴), 백제 무령왕 금제관식, 가야 금관 등 삼국시대의 금관 유물이 대표적이며, 조선시대에는 왕이 쓰는 익선관(翼善冠)과 원유관(遠遊冠), 면류관 등이 사용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상고시대의 왕은 신권적(神權的)인 무(巫)의 성격을 지녔으므로 당시의 관모는 무관(巫冠)으로서의 색채가 농후했던 것으로 분류되며, 그 원형태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형

영어권 군주국에서 왕관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 대관식용 왕관(Coronation crown): 군주가 즉위식에서 착용하는 관.
  • 국왕용 평상관/국가용 왕관(State crown): 그 외 국가 행사에서 착용하는 관.
  • 왕비관(Consort crown): 왕의 배우자가 착용하는 관으로, 헌법적 예우 차원에서 그 지위를 나타낸다.

귀족이나 군주 아래의 고위 인사가 착용하는 관은 영어로 '코로넷(coronet)'이라고 하여 왕관(crown)과 구분되지만, 프랑스어 couronne, 독일어 Krone, 네덜란드어 kroon 등 많은 언어에서는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현대의 용례

오늘날 영국과 통가의 군주제만이 기름부음 의식과 대관식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나, 많은 군주국이 왕관을 국가 상징으로 보존하고 있다. 프랑스 왕실 보물은 1885년 제3공화국 정부에 의해 매각되었고, 루브르 박물관에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의 왕실 보물은 18세기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아일랜드 왕실 보물'로 불리던 성 패트릭 기사단 휘장은 1907년 더블린 성에서 도난당한 바 있다.

이외에도 올림픽이나 미인 대회, 운동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명예의 관, 정교회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에게 씌우는 결혼관(婚冠) 등 왕관의 상징적 사용은 다양한 문화 영역에 걸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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