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왕경홍

왕경홍(王景弘, ?~1434년 또는 1437년)은 중국 명(明)나라의 항해자, 탐험가, 외교관, 선단 제독이다. 왕귀통(王貴通)이라고도 불렸으며, 명나라의 태감(太監, 환관)이었다. 복건성(福建省) 용암현(龍巖縣, 현재의 복건성 용암시) 출신이다.

왕경홍은 원래 연왕(燕王) 주체(朱棣, 후일의 영락제)의 시종이었다. 주체가 황제로 즉위한 후, 왕경홍은 황제를 따라 몽골 원정에 참여하였다. 이후 정사태감(正使太監) 직책으로 정화(鄭和)와 함께 대항해에 나섰다. 정화의 항해 지식과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실제 항로와 함대 관리의 실무는 왕경홍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경홍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정화와 함께 총 7차례의 대원정에 참여하였으며,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탐험하였다. 제2차 원정 당시에는 점성(占城, 참파)에 사행한 기록이 있다. 제7차 원정 도중 정화가 고리(古里, 캘리컷)에서 사망하자, 왕경홍이 선단을 이끌고 귀국하였다.

1424년에는 남경(南京)을 진수하는 황제의 명에 따라 남경수비(南京守備) 직책을 맡았으며, 이듬해인 1425년에는 정화도 같은 직책을 맡았다. 남경 재임 기간 동안 왕경홍은 궁전 수리, 대보은사(大報恩寺) 중수, 북경으로의 물자 운송 감독, 남경 주씨 왕들의 생필품 배급, 관병 선발 및 훈련 등을 담당하였다.

왕경홍은 이후 제8차 항해를 주도하여 수마트라로 향했으나, 항해 도중 난파되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망 당시 나이는 78세였으며, 자바(Java) 세마랑(Semarang)에 묻혔다. 일부 기록에서는 1437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대만과 남양(南洋) 지역의 화교들은 왕경홍을 흔히 왕삼보(王三保)라고 칭하였다. 전설 속에서 그는 대만에 와서 약을 배포하였으며, 자바 세마랑에서 사망하여 삼보동(三保洞) 곁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현지 화교들은 왕삼보가 해상과 화교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며, 많은 사람들이 삼보동을 찾아 참배한다. 명나라 소설 《삼보태감서양기통속연의(三寶太監西洋記通俗演義)》와 잡극 《봉천명삼보하서양(奉天命三保下西洋)》에서는 왕경홍이 문무를 겸비하고 병법에 능통한 장수로 묘사되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