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왈라키아 공국(루마니아어: Țara Românească / Цѣра Рꙋмѫнѣскъ, 영어: Wallachia)은 1330년부터 1862년까지 현대 루마니아 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역사적 국가이다. 북쪽으로 카르파티아산맥, 남쪽으로 도나우강과 접한 광활한 평야 지역에 위치했으며, 문테니아(대왈라키아)와 올테니아(소왈라키아)로 구성된다. 1859년 몰다비아 공국과 동군연합을 이루어 몰다비아-왈라키아 연합공국을 형성하였고, 1862년 공식적으로 통합되어 루마니아 연합공국이 되었다.
명칭과 어원
왈라키아의 루마니아어 명칭은 '로마인의 땅'을 의미하는 'Țara Românească'로, 주류 민족인 루마니아인이 스스로를 로마인의 후예로 여긴 데서 유래했다. 이 명칭은 현대 '루마니아'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 '왈라키아'라는 명칭은 주변 민족들이 사용한 '블라흐(Vlach)'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게르만조어에서 '이방인'을 뜻하는 'walhaz'가 슬라브조어를 거쳐 전해진 표현이다. 헝가리어로는 하버설푈드(Havasalföld, '눈 덮인 저지대'), 라틴어로는 트란살피나(Transalpina), 오스만 튀르크어로는 에플라크(Eflâk)로 불렸다.
역사
건국과 초기 역사
왈라키아 지역은 고대 다키아 왕국의 영토였으며, 서기 106년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 전쟁 이후 로마 제국의 다키아 속주로 편입되었다. 3세기 말 로마군이 철수한 후 고트족, 훈족, 아바르족, 슬라브족 등 여러 민족의 이동과 정착이 이어졌다.
왈라키아 공국은 14세기 초 바사라브 1세(Basarab I)에 의해 건국되었다. 당시 왈라키아는 헝가리 왕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나, 바사라브 1세는 헝가리 왕 카로이 1세에 맞서 1330년 포사다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사실상의 독립을 달성하였다. 초기 수도는 캄풀룽과 쿠르테아 데 아르게슈였으며, 이후 트르고비슈테(1418~1659), 최종적으로 부쿠레슈티(1659년 이후)로 이동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
1417년, 미르체아 1세 치세 이후 왈라키아는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을 받아들여야 했다. 오스만 제국에 매년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내정 자치를 인정받는 봉신국(속국)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15세기 중반 블라드 3세 체페슈(드라큘라의 모티브가 된 인물)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강경한 저항을 펼쳤으나, 결국 오스만의 종주권 아래 머물렀다.
16세기부터 공국의 지배 가문이 빈번히 교체되었으며, 18세기 초부터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인 귀족인 파나리오테스를 공작으로 임명하는 파나리오테스 체제가 도입되었다.
몰다비아와의 연합과 종말
1821년 투도르 블라디미레스쿠가 이끈 봉기 이후 파나리오테스 체제가 종식되었고,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각축 속에서 왈라키아의 자치권이 확대되었다. 1859년, 몰다비아 공국의 통치자로 선출된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가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으로도 동시에 선출되면서 양국은 동군연합을 이루었다. 1862년 2월 5일, 두 공국의 의회와 정부가 통합되면서 '루마니아 연합공국'이 성립하였고, 왈라키아 공국은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이후 1881년 루마니아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정치와 사회
왈라키아 공국의 통치자는 보이보드(Voivode) 또는 돔니토르(Domnitor)로 불렸으며, 전제군주제 성격이 강했으나 보야르(귀족) 세력의 영향력도 컸다. 공용어는 루마니아어와 교회 슬라브어였으며, 종교는 루마니아 정교회가 우세하였다. 경제는 농업과 목축이 기반이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주요 곡창지대 중 하나로 기능하였다.
영향
왈라키아 공국은 현대 루마니아 국가의 핵심적 전신이며, 블라드 3세 체페슈(드라큘라 전설의 역사적 모델)와 미하이 2세(미하이 비테아줄, 역사상 처음으로 루마니아 지역을 통일한 군주)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배출한 지역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