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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창군

완창군(完昌君, 1805년~1843년)은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휘는 시인(時仁), 자는 덕일(德一)이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12대 사손(嗣孫)이자 도정궁(都正宮)의 사손이다.

생애 1805년(순조 5) 5월 2일, 통덕랑 이옥(李𪸛)과 경주 김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830년(순조 30), 백부인 완성군 이희(李爔)가 임종 직전에 상소하여 조카인 이시인을 양자로 삼아 덕흥대원군의 사묘 봉사를 잇게 하였고, 이에 따라 도정궁을 상속받았다.

음직으로 참봉을 거쳐 1837년(헌종 3) 대왕대비의 명으로 소의대부 완창군(完昌君)에 봉작되었다. 이후 사옹원 제조,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1840년(헌종 6)에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흥록대부(興祿大夫)에 올랐다.

1843년(헌종 9) 3월 11일 향년 39세로 별세하여 경기도 양주 별비면(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수락산에 예장되었다.

사후의 일 사후인 1862년(철종 13), 아들 이하전(李夏銓)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오위장 이재두의 무고로 이하전이 유배된 뒤 사사되자, 완창군도 아들의 죄에 연좌되어 파양(罷養)되고 사판(祀版)이 훼철되었다. 이후 1864년(고종 1) 8월 29일, 고종이 "완창군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고 아들의 일에 연루된 것에 불과하니 부당하다"는 전교를 내려 복권되었으며, 사판을 다시 사당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가족 관계

  • 양부: 완성군 이희(李爔)
  • 생부: 이옥(李𪸛)
  • 생모: 경주 김씨
  • 정부인: 남원군부인 윤씨, 경주군부인 김씨
  • 아들: 증 경원군 이하전(李夏銓, 1842~1862) - 헌종조와 철종조에 왕위에 물망에 올랐으나 역모 누명으로 사사됨
  • 서자: 이우용(李禹鎔)
  • 누이가 여흥 민치구(閔致久)에게 출가하였는데, 그 딸이 고종의 사친(私親)인 여흥부대부인 민씨로, 흥선대원군의 부인이다.

완창군은 조선 왕실의 방계 왕족으로서 도정궁의 종손을 이었고, 그의 아들 이하전이 역모로 몰려 사형당한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역사적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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