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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동 (부산)

완월동(玩月洞)은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 일대에 위치했던 성매매 집결지를 가리키는 속칭이다. 정식 행정동 명칭이 아니며, 현재 법정동명은 충무동이다. '달을 감상하는 동네'라는 뜻의 한자어(玩月洞)에서 유래하였다.

역사

완월동의 기원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 일본인 거류지 관외에 있던 좌수토원(佐須土原) 유곽(현 중구 부평동 일대)이 시가지 확장으로 거류지 관내에 편입되자, 유곽의 격리와 풍기문란 방지를 목적으로 1910년까지 아미산 아래 녹정(綠町) 지역으로 이전이 이루어졌다. 1911년 3월 토목 공사가 완료되었고, 1912년 1월부터 '녹정 유곽'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16년 경무총감부령에 따라 공창(公娼) 제도가 시행되면서 부산의 대좌부(貸座敷) 영업 지역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해방 후인 1947년 미군정 아래에서 공창 제도가 폐지되었고, 1948년 녹정이라는 명칭 대신 '완월동'으로 개칭되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들이 이곳을 '그린 스트리트(Green Street)'로 부르기도 했다. 1961년 「윤락 행위 등 방지법」 제정으로 매춘이 금지되면서 사창(私娼)화되었다. 1982년 주민들의 요구로 법정동 명칭이 충무동으로 변경되었으나, 성매매 집결지로서의 기능은 지속되었다. 1991년 「청소년 보호법」 발효로 이 일대는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레드 존)으로 지정되었다.

규모와 현황

1910년대 녹정 유곽의 업소 수는 34호 내외였으며, 매춘업 종사자는 250명 내외로 당시 부산의 다른 공창 지역보다 규모가 컸다. 손님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은 3~4% 정도였다. 1970년대에는 성매매 여관이 124곳에 달했고, 등록된 성매매 여성 1,250명, 미등록자까지 포함하면 약 2,000명에 이르러 국내 최대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로 자리 잡았다.

2004년 「성매매 단속 특별법」 시행 이후 업소와 종사자 수는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이후에도 음성적으로 영업이 지속되었다. 2023년 민간 건설사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재개발 계획이 부산시의 승인을 받으면서 완월동은 12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까지도 일부 업소가 불법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부산시의회에서는 완전 폐쇄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의의

완월동은 일제강점기 공창 제도, 해방 이후 미군 기지촌,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의 성매매 산업, 그리고 2004년 이후의 성매매 방지법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성매매 정책과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로 평가된다. 현재 이 일대는 도시재생 및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며,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을 중심으로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과 역사 기록화(완월 아카이브)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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