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와타나베 지아키

와타나베 지아키(일본어: 渡辺 千秋, 1843년 6월 17일 ~ 1921년 8월 27일)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자 정치가로,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에 활동하였다. 시나노국 스와군 히가시보리촌(현 나가노현)에서 스와 다카시마 번의 하급 무사 와타나베 오노조 마사도쿠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호(號)는 풍관(楓関)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가고시마현 대서기관, 홋카이도 도청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오쿠보 도시미치의 주선으로 궁내성에 봉직하게 되었고, 내장두(内蔵頭), 궁내 차관을 거쳐 1910년 4월 궁내대신에 취임하였다. 1911년에는 조선 병합의 공적으로 백작위를 받았다. 다만 이 승작에 대해서는 와타나베와 조선 병합 사이의 관련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었으며, 당시 원로 가쓰라 다로와의 밀약이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회자되었다.

1914년 4월 궁내대신에서 사임하였다.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궁내성이 무코 이궁 조영을 위해 본원사 스마 별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것이 원인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이 사건의 배후에 와타나베가 야마가타 아리토모 파벌에 속했던 것을 싫어한 사법대신 오쿠다 요시토의 개입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사임 직전인 같은 해 4월 9일 쇼켄 황태후가 붕어했는데, 발표가 이틀간 미뤄진 것은 와타나베를 급거 경질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사직 후에는 은거에 들어갔으며, 작위와 가독은 차남 지하루가 물려받았다. 작위 경력으로는 1900년 남작, 1907년 자작, 1911년 백작에 서임되었다. 상훈으로 대한제국 대훈위 이화대수장이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