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고조(일본어: 渡部 恒三, わたなべ こうぞう, 1932년 5월 24일 ~ 2020년 8월 23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아이즈군 다지마정(현 미나미아이즈정) 출신으로, 중의원 의원을 14선 역임한 원로 정치인이다.
생애 초기와 정치 입문
와타나베는 1932년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메이지 시대에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아버지는 후쿠시마현의회 의원과 다지마정장을 역임한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와타나베는 후쿠시마현립 아이즈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웅변 활동을 하였으며, 이때 후일 자민당 의원이 되는 후지나미 다카오와 동기 회원이었다.
1959년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후쿠시마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3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선거 유세 과정에서 발생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1967년 현의원을 사임했다. 이후 1969년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당선 직후 자민당에 재입당했다.
정치 경력
와타나베는 자민당에서 상공족 의원으로 활약하며 1974년 통상산업정무차관, 1981년 중의원 상공위원장을 지냈다. 1983년 제2차 나카소네 내각에서 후생상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1987년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1989년 제1차 가이후 내각에서 자치상 겸 국가공안위원장, 1991년 미야자와 내각에서 통상산업대신을 역임했다.
1987년 다케시타 노보루가 경세회를 창설할 때 참여하여 이른바 '다케시타파 7봉행'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이후 자민당의 정치 개혁 문제에 대한 대응에 반발하여 신생당 창당에 참여했고, 신생당 해체 후 신진당에 합류하여 간사장 대리, 정무조사회장, 총무회장, 부당수 등을 역임했다.
중의원 부의장 역임
와타나베는 1996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중의원 부의장을 역임했다. 부의장으로 통산 2,498일 재임하여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2000년 부의장 재선 당시에는 야당이 아닌 자민당의 추천으로 재임하는 이례적인 사례가 되기도 했다.
2005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제44회 중의원 총선거에 임했고, 2006년 2월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이후 민주당 최고고문을 지냈다.
말년과 사망
와타나베는 원자력 발전에 적극적이었으나,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2012년 고령을 이유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국민민주당 후쿠시마현연합회 최고고문을 맡았다.
2020년 8월 23일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8세였으며, 사후 정3위에 추서되었다.
기타
와타나베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인물로는 릿츠메이칸 대학의 교수 와타나베 고조(渡辺 公三)가 존재하나, 이는 별개의 인물이다. 또한 성이 '와타나베'이고 이름이 유사한 일본의 축구 선수 와타나베 쓰요시(渡辺剛) 등이 있으나 이 역시 동일 인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와타나베 고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위에서 서술한 일본의 정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