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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마쓰 유지로

와카마쓰 유지로(若松有次郎, わかまつ ゆうじろう, 1897년 2월 1일 ~ 1977년 3월 23일)는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 겸 수의사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수의(수의사) 소장이다. 본래 성은 이케다(池田)였으며, 관료인 와카마쓰 하치로의 양자가 되어 와카마쓰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생애

와카마쓰 유지로는 1897년 2월 1일 일본 가가와현(香川県)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이케다 주조(池田仲三郎)의 아들로 태어났다. 게이오기주쿠 보통부와 구제 제7고등학교 조사관(造士館)을 거쳐 1922년 4월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7월 육군 2등 수의로 임관하여 기병 제13연대에 배속되었다.

이후 사할린주 파견군 군정부, 전신 제1연대 등을 거쳐 1926년 1등 수의로 승진하였다. 1928년 도쿄대학 전염병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육군사관학교 부속 겸 마술(馬術) 교관, 독일 주재, 육군수의학교 방역학 교관 등을 역임하였다. 1934년 3등 수의정(수의 중좌급)으로 진급하였고, 1937년 육군성 병무국 마정과(馬政課)에서 근무하며 수의 중좌로 승진하였다. 수의학교 연구부장을 거쳐 1941년 1월 제13군 수의부장으로 발령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하였고, 같은 해 8월 수의 대좌로 승진하였다.

100부대(관동군 군마방역창) 부대장

1942년 7월 와카마쓰는 관동군 군마방역창(軍馬防疫廠)장으로 발령되어 만주로 파견되었다. 이 기관은 1936년 봄 창춘(長春)에서 "관동군 군마방역창"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된 뒤 1941년에 100부대로 개칭된 부대였다. 이 부대는 적군의 군마(군용 말)를 약화시키기 위한 세균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사람에게까지 감염시킬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생체실험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부대는 731부대와 공동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였으며, 부대 내에서도 731부대와 유사한 방식의 인간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세균전 수행을 위해 대량의 탄저균, 점막마비저(鼻疽), 곰팡이 등을 배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6월 수의 소장으로 진급한 뒤 종전을 맞이하였고, 같은 해 11월에 복원(復員)하였다.

전후

전후 와카마쓰는 전쟁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1947년 11월 28일 공직 추방(公職追放) 가지정을 받았으나, 이후 일본에 돌아와 제약회사인 니혼이야쿠(日本医薬)에서 공장장을 지냈고, 시즈오카현 위생연구소에서도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 세균전 연구 성과를 넘겨주는 대가로 사면을 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

관련 논란

와카마쓰 유지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세균전 연구 및 생체실험에 관여한 인물로서, 전후 전범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 중 하나로 역사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생체실험 관련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과 전후 처우에 대해서는 일부 자료가 남아 있으나, 전체적인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학술적 검증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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