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리풍물놀이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瓦洞)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 풍물놀이이다. '동작리두레풍물놀이' 또는 '와상농악(瓦上農樂)'이라고도 불린다. 다양한 역할을 맡은 춤꾼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놀이꾼이 서로 어울려 몸동작이나 진을 구성하며 노는 놀이이자 연희에 해당한다.
의상 및 도구
와리풍물놀이의 의상은 민복이라 부르는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 조끼를 입으며, 행전을 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상쇠를 비롯한 모든 쇠잡이는 북상을 쓰고, 뒷잽이(치배)들은 나비상을 쓴다. 버꾸잽이는 상모 채상을 쓰며, 무동은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와 남색 쾌자를 입고 빨간 띠를 허리에, 청색·노랑 띠는 가위표로 어깨에서 허리로 내려 묶는다. 잡색으로 나오는 샌님은 흰 도포에 뿔관을 쓰고 담뱃대와 부채를 든다.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장구, 북, 징, 나발, 태평소, 버꾸 등이 있다.
연원 및 역사
와리풍물놀이는 조선시대부터 명성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 경복궁 재건 당시 와상리(瓦上里) 노역부대가 큰 깃발을 앞세우고 풍물가락에 힘을 돋우며 일을 했는데, 흥선대원군이 이를 보고 크게 치하하여 친필 농기와 농악기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후 와상리 두레 농기는 양반기 대접을 받았고, '선생 두레'로 불려 다른 마을의 두레와 마주치면 세 번 반의 인사를 받고 두 번 반의 답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0년 국권피탈 이후 일제강점기 말에는 활동이 거의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195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이루었다. 1960년대 이후 점차 축소되었으며, 1976년부터 시작된 안산 신도시 개발로 마을이 폐동되면서 1987년에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후 단원구 와동 이주민 단지로 이주한 천병희, 장석준, 오월봉, 장필순, 김정환, 방진섭 등이 가락과 판굿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1986년 국가무형유산 발탈 기능보유자 박해일에 의해 발굴되어 '하사받은 와상농기'라는 이름으로 제5회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1991년부터 안산문화원에서 '와리풍물놀이 전수교육' 사업을 시작하면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전수교육이 이루어져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놀이 방법
와리풍물놀이의 가락과 판굿은 인근 지역의 웃다리풍물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놀이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마당밟기로 들어가고 이때 마당잽이라는 가락을 치며 오방진을 치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마당잽이는 군대의 진치기를 묘사한 것으로, 놀이와 함께 지신을 밟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판굿의 기본 짜임은 ①잽이모으기, ②마당밟기(오방진), ③돌림버꾸, ④쩍쩍이굿, ⑤당산벌림, ⑥쌍줄백이, ⑦인놀음, ⑧멍석말이, ⑨사통백이, ⑩새치기, ⑪마당씻기, ⑫인사굿 등으로 구성된다. 가락으로는 더드래기(삼채), 인사굿, 마당잽이, 마당삼채, 몰아잽이, 섭치기, 우물가락(샘굿), 길군악(칠채), 넙치기, 쩍쩍이가락, 연풍대, 허튼가락(탈춤가락), 짠지패가락(굿거리) 등이 다양하게 전승된다.
현황
현재 와리풍물놀이는 안산시의 주요 문화행사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안산문화원을 중심으로 전수교육이 지속되고 있다. 안산시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자리매김하여 지역 문화유산으로서 보존·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