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묘(臥龍廟)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인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모시는 사당이다. 제갈량의 자(字)는 공명(孔明)이며, 호(號)는 와룡(臥龍, '엎드린 용')으로, 그의 호를 따서 와룡묘라 이름 붙여졌다.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산5-6번지, 남산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 제5호로 지정되었다.
와룡묘의 처음 건립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 따르면, 1605년(선조 38년) 평안도 영유현(永柔縣)에 공식적으로 와룡묘를 짓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역대 왕들이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거나 제문을 내린 사례가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서울 예장동에 있는 와룡묘와 평안도 영유현의 와룡묘와의 직접적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의 와룡묘는 조선시대 말의 엄상궁(嚴尙宮)이 처음 세웠다는 설이 전해지나, 이를 확증할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하다.
1924년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고, 1934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내부 중앙에는 석고로 만든 제갈량상이, 오른쪽에는 관성제군(관운장, 關雲長), 즉 관우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각 상의 둘레는 약 2m, 높이는 약 2.5m이다. 정면과 측면의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경내에는 와룡묘 본전 외에도 단군묘(檀君廟), 제석전(帝釋殿), 약사전(藥師殿), 삼성각(三聖閣), 문신각(文臣閣), 요사(寮舍) 등이 함께 위치해 있다. 이는 와룡묘가 단순히 중국 도교계 신령만을 모시는 사당이 아니라, 불교·도교·한국 민간신앙이 혼합된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간에서는 이곳을 '와룡당'이라고도 부르며, 특히 전래 계급의 무당(巫)들이 즐겨 찾아 치성을 드렸고, 옛날에는 맹격(盲覡, 눈먼 무당)들이 많이 찾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와룡묘는 중국 삼국지의 유명 인물인 제갈량과 관우를 모신다는 점, 그리고 한국 무속 신앙과 결합하여 독특한 종교적 혼합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민속학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