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와디할파

와디할파(아랍어: وادي حلفا, 영어: Wadi Halfa)는 수단 공화국 북부 주(Northern State)에 위치한 도시로, 나일강 상류에 조성된 누비아호(Lake Nubia) 연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집트와의 국경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져 있으며, 좌표는 북위 21°47′, 동경 31°22′이다.

명칭과 어원

와디할파라는 지명은 아랍어로 "와디(Wadi)"는 계곡·건천을, "할파(Halfa)"는 섬유 원료로 쓰이는 에스파르토(알파)풀을 뜻한다. 즉, "에스파르토 풀이 자라는 계곡"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Halfa 또는 Wady Halfa로도 표기된 바 있다.

지리와 기후

와디할파는 누비아 사막(Nubian Desert)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쾨펜 기후 구분상 열대 사막 기후(BWh)에 해당한다. 연평균 일조 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인 약 4,300시간으로, 가능 일조량의 97~98%에 달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0.5mm에 불과하며, 수년간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해도 많다. 연평균 기온은 약 27°C이며, 5월부터 9월까지는 평균 최고기온이 40°C를 초과한다. 연평균 잠재 증발량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약 5,930mm로 보고된다.

역사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고대부터 정착지가 존재했으며, 이집트 중왕국 시기에는 강 건너편에 이집트의 식민지 부헨(Buhen)이 있었다. 중세에는 기독교 왕국인 마쿠리아 왕국의 관할 아래 메카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현대의 도시는 19세기에 아스완에서 출발하는 증기선의 나일강 항구로 기능하면서 형성되었다. 1820년 투르크-이집트 정복 당시 남진하는 군대의 중간 기착지로 사용되었으며, 1866년에는 이집트와 연결되는 전신선이 개통되었다. 이후 수단 철도의 종점이 이곳에 놓이면서 와디할파는 기존의 대상(隊商) 거점이었던 코로스코를 대체하는 교통 요충지로 부상하였다.

1885년부터는 마흐디 전쟁의 영향으로 혼란기를 겪었으며, 1896~1898년경에는 커처너(K Kitchener)가 이끄는 영국 및 이집트 군대가 마흐디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임시 본부가 이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1897년에는 군사 지원을 위한 나일강 철도 공사가 시작되었다.

1959년 11월 8일, 수단과 이집트(당시 UAR) 사이에 나일강 수자원 협정이 체결되면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이 확정되었다. 이로 인해 약 52,000명의 주민이 1960년부터 4년에 걸쳐 이주해야 했으며, 특히 누비아인들의 반발이 컸다. 1960년 10월에는 와디할파에서 재정착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통신을 차단하는 등 강경 대응을 취했다. 결국 구시가지는 1964년 아스완 하이 댐 완공으로 인한 범람으로 완전히 수몰되었으며, 대부분의 주민은 이전된 신시가지로 옮겨졌다. 1965년 기준 신할파(New Halfa)의 인구는 약 3,200명이었다.

경제와 교통

와디할파의 경제에서 농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중국 측의 투자로 어류 가공 공장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 도시는 카르툼에서 이어지는 철도의 종점이자, 나일강 호수를 통한 페리 운송과 철도 화물이 환적되는 지점으로 기능한다. 범아프리카 고속도로의 일부인 카이로-케이프타운 하이웨이가 와디할파를 통과한다. 2012년에는 이집트의 아스완과 와디할파를 잇는 표준궤 철도 연결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후의 정정 불안과 2023년 발발한 수단 내전으로 인해 공사는 지연된 상태이다.

인구

와디할파의 인구는 2007년 기준 약 15,725명으로 보고되었다. 다만 일부 자료에 따르면 약 16만 명이라는 상이한 수치도 존재한다. 이 도시 일대는 고대 누비아 유적이 다수 분포하는 지역으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이전에 유물 보존을 위한 대규모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