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 Wagatsuma Sakae)는 일본의 민법학자이다. 일본 민법학의 태두로 평가되며, 만주국 민법 기초에도 관여하였다.
생애
1897년 4월 1일 일본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에서 요네자와중학교 영어교사인 부친의 1남 4녀 중 외동아들로 출생하였다. 1914년 요네자와중학교를 졸업하고 제1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917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법률학과(독일법 전공)에서 수학하였다. 재학 중이던 1919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고, 지도교수 하토야마 히데오의 권유로 학자의 길을 선택하여 1920년 3월 졸업과 동시에 조수로 임용되었다.
1922년 25세의 나이로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조교수가 되었고, 1927년에는 스승 하토야마 히데오로부터 교수직을 이어받아 30세의 나이에 교수로 취임하였다. 1945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장으로 선출되었고, 장인인 작곡가 스즈키 요네지로가 설립한 동양음악학교(현 도쿄음악대학)의 교장으로도 부임하였다. 1946년 헌법 개정을 위한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1947년 5월 2일까지 재임하였다. 1949년 일본학사원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1957년 정년퇴임과 동시에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되었고, 1961년 '친족법' 논문으로 도쿄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문화훈장을 수훈하였으며, 1973년 10월 21일 급성 담낭염으로 사망하였다.
학문적 업적
지도교수 하토야마 히데오의 연구에 기반하여, 일본 민법 제정 당시 프랑스법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던 일본 민법을 독일법에서 유래한 해석법학으로 발전시켜 일본 민법학계의 통설을 형성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민법강의(民法講義)』 시리즈와 『근대법에 있어서 채권의 우월적 지위(近代法における債権の優越的地位)』가 있다. 후자의 저작에서 그는 자본주의 발달에 부응하는 사법(私法)의 변천을 연구 주제로 삼아, 채권 양도 및 저당권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유동화'를 핵심 명제로 제시하였다. 이는 단순한 실정 민법학을 넘어 법사회학적·법진화론적 관점을 포함하는 학문적 작업으로 평가된다.
한국 법학에의 영향
와가쓰마 사카에가 구축한 민법학은 대한민국 민법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민법 교과서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오랫동안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인명 표기 관례상 한국 한자음인 '아처영(我妻榮)'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고향인 요네자와시에는 생가가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