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반도 전투(甕津半島戰鬪, Battle of Ongjin Peninsula)는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5일부터 6월 26일까지 이틀간 경기도 옹진반도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는 한국 전쟁의 서막을 연 초기 전투 중 하나로, 폭풍 작전(Operation Pokpung)의 일환으로 기습 남침을 감행한 조선인민군과 이에 맞서 방어전을 수행한 대한민국 국군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배경
옹진반도는 38도선 분계선의 서쪽 끝에 위치한 지역으로, 동·서·남쪽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고 육로로는 해주만을 통해 북한 지역과 연결되는 고립된 지역이었다. 38선 획정 이후 옹진반도는 대한민국 영토였으나, 육로로는 접근이 불가능하여 해상으로만 보급과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전략적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1949년에는 이 지역에서 북한군의 38도선 침범으로 인한 국지적 충돌이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교전 부대
대한민국 국군 측에서는 독립 제17연대(연대장 대령 백인엽)가 방어를 담당하였다. 제17연대는 약 3,600명의 병력과 각종 대포 57문, 기관총 25정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제7야전포병대대, 공병대, 병참보급소, 야전병원 등이 배속되어 있었다.
조선인민군 측에서는 제6사단 제14연대(전차 1개 중대 증강)와 제38경비 제3여단(여단장 소장 최현)이 공격을 수행하였다.
전투 경과
1950년 6월 25일 04:00, 조선인민군은 붉은 신호탄을 신호로 각종 포병의 공격준비사격을 국군 방어진지에 집중하였다. 30분간의 치열한 포격 후, 기병대와 전차를 선두로 한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좌전방(옹진 북방)의 제2대대 지역과 우전방(강령 북방)의 제3대대 지역에서 동시에 전투가 벌어졌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국군의 유선 통신망이 모두 두절되었고, 제1대대장 김희태 소령이 전사하는 등 혼란 속에서 방어선이 흔들렸다.
국군 제2대대는 역습에 성공하여 일시적으로 주저항선을 회복하기도 하였으나, 우전방에서 북한군의 주공(제14연대)이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워 돌파하는 데 성공하면서 강령과 양원이 함락되었고, 옹진반도는 동서로 양분되었다.
철수
옹진반도 방어가 불가능해진 국군 독립 제17연대는 육군본부의 사전 작전 계획(제3호 작전: 전면적 남침 시 해상으로 철수)에 따라 해상 철수를 실행하였다. 연대본부와 제3대대는 지연전을 펼치며 부포항으로 철수하여 6월 26일 오전 해군 함정(LST-801함) 편으로 인천으로 이동하였다. 제2대대와 제1대대 잔존 병력 및 낙오병들은 사곶항으로 철수하여 민간 선박을 이용, 군산으로 이동하였다.
결과
조선인민군이 옹진반도를 점령하면서 북한군의 승리로 끝났다. 대한민국 국군 측 피해는 약 1,420명의 사망 또는 실종이 보고되었다. 철수에 성공한 독립 제17연대는 이후 대전에서 재편성되어 정부 경호 임무를 수행하고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의의
옹진반도 전투는 한국 전쟁 최초의 전투 중 하나로, 조선인민군의 전면적인 기습 남침 개시 시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전투이다. 동시에 지리적으로 고립된 방어지역에서 우세한 적의 공격을 받은 국군이 사전에 계획된 해상 철수 작전을 통해 주력을 보존한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