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고대 그리스어: Ὄλυμπος, Ólympos; 라틴어: Olympus; 영어: Olympos)는 소아시아 남서부의 고대 지역인 리키아(Lycia)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현재의 튀르키예 안탈리아 주 케메르(Kemer) 인근, 치랄르(Çıralı) 마을 부근에 해당한다. 안탈리아 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90km 떨어져 있으며, 지중해로 흘러드는 깊은 협곡 양쪽으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도시의 이름은 인근에 위치한 올림포스 산(튀르키예어: Tahtalı Dağı, 2,366m)에서 유래하였다. 고전 시대에 '올림포스'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스무 곳이 넘었으며, 이 산은 그중 하나이다.
올림포스는 헬레니즘 시대에 창건되었다. 가장 오래된 문헌상의 언급은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이 아르테미도로스(Artemidorus of Ephesus)를 인용한 『지리지(Geographica)』에서 나타난다. 올림포스는 리키아 동맹(Lycian League)의 주요 회원 도시 중 하나로, 연방 의회에서 3표를 행사할 수 있는 6개 도시(크산토스, 파타라, 미라, 피나라, 틀로스, 올림포스) 가운데 하나였다. 리키아 동맹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적 연방 체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기원전 1세기, 도시는 해적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시작했다. 해적 두목 제니케테스(Zeniketes)가 올림포스를 거점으로 삼아 인근 도시들을 장악하고 리키아 동맹과 로마의 상업 이익을 위협하였다. 이에 로마는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Publius Servilius Vatia)를 파견하여 원정을 감행하였다. 기원전 78년, 로마군이 올림포스를 포위하자 제니케테스는 스스로 불을 질러 가족과 함께 자결하였다. 이후 올림포스는 리키아 동맹에서 추방되었으며, 로마의 공유지(ager publicus)로 편입되었다. 이 원정에는 젊은 시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림포스는 1세기 AD에 이르러 다시 리키아 동맹에 복귀하였다. 로마 제국 시기 동안 도시는 재정비되어 히포다모스식(Hippodamic plan)의 직각 도로망을 갖춘 계획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북항로(Northern Harbor Street), 교량로(Bridge Street), 삼중 아치교 등이 대표적인 로마 시대 도시 시설이다.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재위 117-138)가 도시를 방문한 이후 하드리아노폴리스(Hadrianopolis)로 개명되기도 하였다. 주요 공공 건축물로는 베스파시아누스 목욕탕(Vespasian Baths)이 있으며, 북부 지역에는 무덤과 신전이 집중되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 올림포스는 쇠퇴하였으나, 5세기 비잔틴(동로마) 제국 시기에 주교구(bishopric)로서 다시 번성하였다.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한 올림포스의 메토디오스(Methodius of Olympus)는 리키아와 올림포스의 초대 주교로 알려져 있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5~6세기의 집중적인 개발로 도시 중심부에는 9개의 교회(모두 3랑식 바실리카)가 건립되었으며,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7세기 이후 아랍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의 리키아 항구 도시들과 함께 올림포스도 버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도시 이름이 마지막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9세기이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도시 성벽(헬레니즘 시대 다각형 석조 기법), 로마 시대 목욕탕과 신전, 교량, 비잔틴 시대 교회 유적, 다양한 비문(비문) 등이 확인되었다. 도시의 시민을 지칭하는 민족명(ethnicon)은 '올림페노스(Ὀλυμπηνός)'로 나타난다.
현재 올림포스는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고대 도시 유적은 숲과 해변이 어우러진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근에는 키메라의 영원한 불길(Yanartaş / Chimera flames)로 알려진 자연 현상이 위치해 있다. 올림포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명목상 주교구(titular see)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