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르지흐(체코어: Oldřich)는 체코의 남성 인명으로, 보헤미아의 공작이었던 역사적 인물(약 975년 ~ 1034년)을 가리키는 이름이자, 현재까지 체코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남성 이름이다. 이 단어는 실존하는 개념으로서 공신력 있는 역사적·언어학적 정보가 풍부하게 존재한다.
어원
올드르지흐(Oldřich)라는 이름은 고대 고지 독일어(Old High German)의 'Uodalrich'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오달(uodal)'과 '리히(rich)'라는 두 요소의 결합으로, 각각 '상속 재산' 또는 '선조의 유산'과 '부유한', '통치자'를 뜻한다. 따라서 이 이름의 의미는 대체로 '부유한 영주' 또는 '조상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로 해석된다. 같은 어원을 지닌 독일어 이름인 울리히(Ulrich)와 동계 관계에 있으며,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서는 울리히(Ulrich), 슬로바키아어에서는 올드리흐(Oldrich), 이탈리아어에서는 울데리코(Ulderico) 등의 형태로 사용된다.
역사적 인물
가장 널리 알려진 올드르지흐는 보헤미아의 공작(재위: 1012년 ~ 1033년, 1034년)이다. 그는 프르셰미슬 왕조(Přemyslid dynasty) 출신으로, 볼레슬라프 2세 공작의 셋째 아들이자 볼레슬라프 3세 공작의 동생이었다.
1002년 형 볼레슬라프 3세와 함께 신성 로마 제국으로 망명했으나, 1003년 보헤미아의 공작이던 블라디보이가 사망하면서 보헤미아로 귀환하였다. 1012년에는 형 야로미르를 몰아내고 보헤미아의 공작으로 즉위했다. 1029년에는 아들 브르제티슬라프 1세와 함께 폴란드가 차지하고 있던 모라바 지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1030년에는 당시 슬로바키아·헝가리 일대에 대한 탈환 시도에 나섰으나 실패하였다.
1032년 메르제부르크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되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콘라트 2세의 분노를 샀고, 1033년 보헤미아에서 체포되어 바이에른으로 송환되었다. 이후 형 야로미르가 잠시 공작으로 복위했으나, 1034년 야로미르가 쫓겨나면서 올드르지흐가 다시 공작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해에 사망했으며, 공작위는 아들 브르제티슬라프 1세가 승계받았다.
인명으로서의 사용
올드르지흐는 오늘날에도 체코에서 전통적인 남성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체코의 민간 달력(občanský kalendář)에서는 2월 20일이 이 이름의 이름날(svátek)로 지정되어 있다. 2016년 기준 체코에서 약 24,000명 이상이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남성 이름 중 빈도 순위 105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다만 사용 빈도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애칭·소형 형태로는 올다(Olda), 올레크(Olek), 올린(Olin), 올리크(Olík) 등이 사용된다. 여성형 이름으로는 올드르지슈카(Oldřiška)가 있다.
관련 인물
이 이름을 지닌 역사적·현대적 인물로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주교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는 울리히(890~973), 보헤미아의 공작 올드르지흐(†1034), 브르노의 공작 올드르지흐(†1113),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인 올드르지흐 체르니크(1921~1994), 체코의 배우 올드르지흐 카이세르, 올드르지흐 노비(1899~1980), 올드르지흐 비즈네르, 영화 감독 올드르지흐 립스키(1924~1986) 등이 있다.
표기 및 발음
한국어 표기 '올드르지흐'는 체코어 발음 [ˈoldr̝ɪx]를 음차한 것이다. 체코어 철자 'ř'는 독특한 발음으로, 한국어에는 정확히 대응하는 음가가 없어 '르지' 또는 '르쥐' 등으로 근사하게 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