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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덴부르크 대공국

올덴부르크 대공국(독일어: Großherzogtum Oldenburg)은 1815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한 독일 북서부의 대공국이다. 홀슈타인-올덴부르크(Holstein-Oldenburg)라고도 불렸다.

개요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독일 연방, 북독일 연방 및 독일 제국을 구성한 대공국으로, 세 개의 널리 분리된 영토로 구성되었다: 올덴부르크 본토, 유틴(Eutin), 그리고 비르켄펠트(Birkenfeld)였다. 수도는 올덴부르크(Oldenburg)였다. 독일 제국 내의 주(州) 가운데 10위에 해당하는 규모였으며, 연방의회(Bundesrat)에서 1표, 제국의회(Reichstag)에서 3석을 보유하였다. 1905년 기준 면적은 약 6,427 km², 인구는 약 54만 5천 명이었다.

역사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1815년 빈 회의(Congress of Vienna)에서 옛 올덴부르크 공국(Duchy of Oldenburg)의 영토와 비르켄펠트 공국(Principality of Birkenfeld)이 결합하여 성립되었다. 빈 회의에서 대공국으로 승격되었으나, 초대와 2대 대공은 스스로를 공작(Herzog)으로만 칭하였고, 1829년 즉위한 아우구스투스(Augustus) 대공이 처음으로 대공(Großherzog) 칭호를 사용하였다.

초기 대공들은 온정주의적 통치를 펼쳤으나 헌법 제정에는 소극적이었다. 1848년 유럽 각지에서 혁명이 발생하자(1848년 혁명), 올덴부르크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으나 심각한 소요는 발생하지 않았다. 1849년 아우구스투스 대공은 매우 진보적인 성격의 헌법을 제정하였고, 1852년 일부 수정이 가해졌으나 여전히 독일 연방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 중 하나로 남았다.

1853년부터 통치한 페터 2세(Peter II)는 1863년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국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는 듯했으나, 1867년 프로이센 왕국에 이를 양보하고 소정의 보상을 받았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7주 전쟁)에서 프로이센 편에 서서 참전하였고, 이후 북독일 연방에 가입하였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성립되면서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제국의 구성국이 되었다.

통치 가문

올덴부르크 대공국을 통치한 가문은 올덴부르크가(House of Oldenburg)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왕가 중 하나이다. 이 가문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러시아, 영국 등 여러 유럽 국가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다.

대공 목록

  • 빌헬름 1세 (William I, 1815년~1823년)
  • 페터 1세 (Peter I, 1823년~1829년)
  • 아우구스투스 (Augustus, 1829년~1853년)
  • 페터 2세 (Peter II, 1853년~1900년)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Frederick Augustus II, 1900년~1918년)

종말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1918년 독일 혁명(German Revolution)으로 군주제가 붕괴되면서 해체되었다. 마지막 대공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퇴위하였고, 대공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구성주인 올덴부르크 자유주(Free State of Oldenburg)로 전환되었다. 올덴부르크 자유주는 1946년까지 존속하다가 니더작센주(Niedersachsen)에 통합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국가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국가(國歌)는 "Heil dir, o Oldenburg"(만세, 오 올덴부르크)였다.

통화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1858년까지 탈러(Thaler), 1858년부터 1873년까지 베라인탈러(Vereinsthaler), 1873년부터 1914년까지 금 마르크(Goldmark),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를 통화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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