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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홀

옥홀(玉笏)은 한국 전통 시대에 왕이나 관리들이 조복(朝服)이나 제복(祭服)을 착용할 때 손에 쥐었던 의식용 기물을 가리킨다. '옥(玉)'은 옥(구슬)을, '홀(笏)'은 조정에서 신하가 임금 앞에서 손에 들던 좁고 긴 판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비가 사용하는 것은 옥으로 만들어 옥규(玉圭)라 하였고, 문무백관이 사용하는 것은 홀(笏)이라 하여 구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품계에 따라 재질이 달라 1품에서 4품까지는 상아로 만든 상아홀(象牙笏), 5품에서 9품까지는 나무로 만든 목홀(木笏)을 사용하도록 규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이 최산두(崔山斗)에게 하사한 옥홀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1974년 지정)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유물은 청백색의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27.4cm, 폭 3.4cm이고 '일인유경보명유신(一人有慶寶命維新)'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초계최씨(草溪崔氏)의 시조인 최산두는 중종 8년(151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는데, 그해에 하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옥홀'은 한자 자전에서 한자의 훈(뜻)으로도 사용된다. 한자 '琮(종)'의 뜻은 '옥홀', '구멍이 있는 팔각형 옥' 등으로 풀이되며, '瑁(모/매)'의 뜻 역시 '옥홀'로 풀이된다. '瑁'는 '대모(玳瑁, 바다거북의 일종)' 등의 단어에 사용된다.

홀(笏)의 기원은 고대 중국의 『주례(周禮)』에서 찾을 수 있으며, 원래는 임금 앞에서 아뢸 말을 잊지 않도록 적거나 왕의 명령을 기록하기 위해 들던 데서 유래하여 점차 의례용품으로 정착되었다. 한국에는 신라 법흥왕 10년(523년)에 홀 사용이 문헌상 처음 확인되며,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제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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