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브 푀이예(Octave Feuillet, 1821~1890)는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1821년 8월 10일(또는 7월 11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생로(Saint-Lô)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 12월 28일(또는 29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가정의 뮈세(le Musset des familles)"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회원이었다.
푸이예의 문학적 위상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명료하고 품위 있는 삶의 묘사", 여성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대한 정교한 분석, 그리고 절제되고 재치 있는 산문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858년에 발표된 소설 《가난한 젊은이의 이야기(Le Roman d'un jeune homme pauvre)》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작품은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에서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 《벨라(Bellah, 1852)》, 《작은 백작부인(La Petite Comtesse, 1857)》, 《달릴라(Dalila, 1857)》, 《시빌(Sibylle, 1862)》, 《카모르 씨(Monsieur de Camors, 1867)》, 《훌리아 드 트레쾨르(Julia de Trécœur, 1872)》, 《라 모르트(La Morte, 1886)》 등이 있다.
푸이예는 파리의 리세 루이르그랑(Lycée Louis-le-Grand)에서 수학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외교관을 준비했으나 1840년에 문필가의 길을 선택하였고, 이후 폴 보카주(Paul Bocage)와 협업하여 희곡을 발표하는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1851년에는 사촌인 발레리 뒤부아(Valérie Dubois)와 결혼하였으며, 그 역시 작가였다. 186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선출되었고, 1864년에는 퐁텐블로 궁전의 사서(librarian of Fontainebleau)로 임명되었다. 그는 프랑스 제2제정 시대에 황실의 후원을 받으며 궁정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푸이예의 작품 세계는 귀족 사회의 화려함과 고독, 사회적 문제 등을 다루었으며, 동시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영국 문학평론가 월터 페이터(Walter Pater)는 1889년 저서 《감상(Appreciations)》에서 푸이예의 《라 모르트》를 분석하며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