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대(玉帶)는 왕, 왕비, 왕세자 등 왕실의 고위 인사가 예복(조복, 상복, 제복)을 착용할 때 허리에 두르던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이다. '옥대'라는 명칭은 띠돈(帶錢, 허리띠에 붙이는 장식판)을 옥(玉)으로 만든 데서 유래하였다.
역사적 배경 및 용도
옥대는 신라 시대부터 제도화된 각대(角帶)가 발달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왕실 복식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고려 시대에는 중국 황제로부터 하사받기도 하였고, 왕이 전공을 세운 중신이나 중흥공신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왕이 상복(常服), 즉 곤룡포(袞龍袍)를 입을 때 옥대를 착용하였다. 이후 1626년(인조 4)에 왕의 면복(冕服)에도 혁대가 필요하다는 논의에 따라 『대명회전』과 『대명집례』를 참고하여 면복에도 옥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형태와 재질
옥대는 가죽으로 만든 혁대(革帶)를 신분에 따라 홍단(紅緞), 청단(靑緞), 흑단(黑緞) 등의 비단으로 싸고 그 위에 금선(金線)을 그어 장식하였다. 띠돈의 소재에 따라 옥대(玉帶), 금대(金帶), 은대(銀帶), 각대(角帶) 등으로 구분되었으며, 옥대는 그중 가장 높은 신분을 상징하였다.
- 왕과 왕비: 무늬를 조각한 옥(조옥, 雕玉)을 사용. 왕은 홍색 비단으로 싼 혁대 위에 금선을 둘렀고, 왕비는 청색 비단을 사용.
- 왕세자와 왕세자빈: 무늬를 새기지 않은 민옥(無文白玉)을 사용. 왕세자는 흑단(검은 비단), 왕세자빈은 청단을 사용.
- 왕세손: 조선 초기에는 옥대를 사용하다가 1648년(인조 26)에 수정대(水晶帶)를 사용하도록 정해졌다.
황제, 황태자, 왕의 옥대는 붉은 띠(홍정, 紅鞓)에 용 무늬를 투각한 띠돈 20개를 사용하였고, 왕세자의 옥대는 검은 띠(흑정, 黑鞓)에 민옥 20개의 띠돈을 사용하였다.
신라의 옥대 설화
신라에는 옥대와 관련한 두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첫째는 진평왕 즉위년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준 신성한 옥대를 받았다는 '천사옥대(天賜玉帶)' 설화로, 이 옥대는 황룡사의 장육존상, 구층목탑과 함께 신라 삼보(三寶) 중 하나로 꼽혔다. 둘째는 신문왕대의 '흑옥대(黑玉帶)' 설화이다. 이 두 설화는 옥대를 매개로 왕권의 정통성과 신성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현존 유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순종황제가 왕세자 시절 착용한 옥대가 소장되어 있으며,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세종대학교 박물관에도 각각 조선 시대 옥대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