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나타촌(大日向村, おおひなたむら)은 일본 나가노현(長野県) 미나미사쿠군(南佐久郡)에 있었던 촌(村)이다. 현재의 나가노현 사쿠호정(佐久穂町)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역사
1889년 4월 1일, 정촌제(町村制) 시행에 따라 사쿠군(佐久郡) 오히나타촌이 단독으로 촌제를 시행하며 성립하였다. 당시 촌의 면적은 약 52.84㎢였으며, 1955년 국세조사 기준 인구는 1,853명이었다. 촌의 지리적 특징으로는 산악 지역에 위치하여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가난한 농촌이었다.
1938년, 촌민의 절반가량을 당시 만주(지린성)로 보내 현지에 분촌(分村)을 성립시켰다. 이는 일본 정부의 만주 개척 정책에 따른 것으로, 모범적인 농촌으로서 정부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 사건은 작가 와다 덴(和田傳)의 소설 《오히나타촌》과 이를 기초로 한 1940년 국책 영화 《오히나타촌》(도쿄 발성 영화 제작소, 감독 도요타 시로)의 모델이 되었다. 이후 1985년에는 만주 이주와 그 이후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히나타촌의 46년》이 제작되었다.
또한 1884년에는 지치부 사건(秩父事件)의 폭도들이 무슈 가도(武州街道)를 통해 오히나타촌에 침입하여 당시 호농(豪農)이었던 아사카와 가문의 세 집을 습격한 사건이 있었다. 미리 대피하여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가옥에 도끼와 칼 자국이 남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6년 9월 30일, 사쿠정(佐久町)에 편입되며 소멸하였다.
만주 개척과 관련된 참고 사항
만주로 이주한 오히나타촌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인 약 377명이 종전 후의 피난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국한 주민 일부는 나가노현 기타사쿠군(北佐久郡) 가루이자와정(軽井沢町)의 오히나타 지역에 재입주하였다. 전후 복귀자 정착지인 가루이자와의 오히나타 개척지는 일본 천황 부부가 방문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명 의미
'오히나타'(大日向)라는 명칭은 '햇볕이 잘 드는 큰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지명의 정확한 유래와 어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