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빌 가문(프랑스어: Maison de Hauteville, 이탈리아어: Casa d'Altavilla, 시칠리아어: Casa d'Autaviḍḍa)은 코탕탱 반도 출신의 노르만 귀족 가문으로, 11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를 지배하며 지중해 일대에서 크게 명성을 떨친 가문이다. 이 가문은 노르만인의 이탈리아 남부 정복과 시칠리아 왕국의 성립, 그리고 제1차 십자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원
오트빌 가문은 10세기경 노르망디의 오트빌라기샤르(Hauteville-la-Guichard) 지역에 정착한 노르드인(바이킹)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코탕탱 반도에 정착하여 가문의 이름이 유래한 마을을 세웠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원지의 식별은 현대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았다. 가문의 명확한 역사적 출발점은 노르망디의 하급 지주였던 탄크레드 드 오트빌(Tancred de Hauteville)이다. 그는 생전에 소남작에 머물렀으나 두 명의 아내 사이에서 12명의 아들과 최소 두 명의 딸을 두었다. 그의 제한적인 재산은 아들들의 야망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했고, 그중 8명의 아들이 이탈리아 남부(메초조르노)로 진출하여 가문의 운명을 바꾸게 되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의 부상
1035년경, 탄크레드의 아들 중 장남인 "강철팔" 기욤과 드로고가 최초로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세력에 맞서 싸우며 명성을 얻었고, 기욤은 풀리아와 칼라브리아 백작이 되었다. 드로고는 1047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로부터 아풀리아의 영주권을 승인받았다. 이후 형제인 옹프루아가 치비타테 전투에서 교황 레오 9세를 격퇴하며 가문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였다.
가문의 정점은 탄크레드의 둘째 부인 소생의 장남인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059년 교황으로부터 공작위를 받았으며, 동생 로제 드 오트빌과 함께 시칠리아 정복을 개시하였다. 기스카르는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쟁을 진행하는 한편, 해상 전력을 구축하여 당시 지중해 일대에 두각을 나타냈다.
시칠리아 왕국
로제 드 오트빌은 시칠리아를 정복한 뒤 그리스인, 롬바르디아인, 노르만인, 사라센인 등 다양한 민족과 종교 집단을 단일 통치 아래 두는 통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의 아들 로제 2세는 1127년 풀리아와 칼라브리아 공국의 후계권을 확보한 데 이어, 1130년 12월 25일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창건하였다. 로제 2세는 북아프리카의 마디아를 정복하여 "아프리카의 왕"이라는 비공식적인 칭호를 취하기도 하였다.
로제 2세의 아들 기욤 1세와 손자 기욤 2세 시기에 왕국은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나, 1189년 기욤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왕국은 혼란에 빠졌다. 이후 로제 2세의 딸 콘스탄체와 그녀의 남편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왕위를 차지하면서, 1194년 시칠리아 왕국은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지배로 넘어갔다. 이로써 오트빌 가문의 직접적인 남계 통치는 종료되었다. 다만 콘스탄체를 통해 가문의 혈통은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로 이어졌다.
십자군 활동
오트빌 가문은 십자군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들 보에몽 1세는 제1차 십자군에 합류하여 안티오키아를 점령하고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웠다. 그의 조카 탕크레드는 갈릴리 영주가 되었으나 1101년에 그 영지를 포기하였다. 안티오키아 공국은 보에몽의 후손들을 통해 1163년까지 존속하였다.
가문의 영향과 평가
오트빌 가문은 중세 유럽 역사에서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지역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가문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정복 활동은 이슬람 세력과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한 시칠리아 왕국의 문화적 융합은 중세 지중해 세계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가문의 주요 구성원으로는 로베르 기스카르, 시칠리아의 로제 1세, 로제 2세, 기욤 1세, 기욤 2세, 안티오키아의 보에몽 1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