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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타치바나히메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媛, おとたちばなひめ)는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로, 제12대 게이코 천황의 아들인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일본무존)의 아내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게이코 천황 40년(추정)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칭과 표기

『일본서기』에는 弟橘媛, 『고사기』에는 弟橘比売命으로 표기되어 있다. '오토'(弟)는 '연하의' 또는 '작은'을 의미하는 접두어로, 단순히 타치바나히메(橘媛)라고도 불린다. 『일본서기』에서는 그 지위를 비(妃), 『고사기』에서는 후(后)로 기록하였는데, 이는 모두 일본어 훈독으로 기사키(きさき)라 읽는다.

출신과 가계

『일본서기』에 따르면, 호즈미 씨(穂積氏)의 선조인 오시야마노 스쿠네(忍山宿禰)의 딸이다. 호즈미 씨는 야마토국의 중심지를 본거지로 한 고대 호족으로, 모노노베 씨(物部氏)와 동족 관계에 있으며, 이후 스즈키(鈴木) 씨 등으로 분화되었다. 오토타치바나히메는 야마토타케루와의 사이에서 와카타케히코노 미코(稚武彦王)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일부 전승에서는 오시야마 스쿠네의 친딸이 아니라 양녀였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전승 속의 희생 설화

오토타치바나히메의 가장 유명한 일화는 하시리미즈(走水海, 현재의 도쿄만 우라가 수도 일대)에서의 희생이다. 야마토타케루가 동국 정벌을 위해 사가미(相模)에서 가즈사(上総)로 건너가려 할 때,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 배가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오토타치바나히메는 해신(海神)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이 남편을 대신하여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자청하였다.

『고사기』에 따르면, 그녀는 왕골로 만든 거적 여덟 장, 가죽 거적 여덟 장, 명주 거적 여덟 장을 파도 위에 깔고 그 위에 내려가 앉아 바다에 들어갔으며, 이후 파도가 잠잠해져 배가 전진할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그녀가 "천한 첩이 왕의 목숨을 대신하여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후 파도를 헤치고 들어갔다고 전한다. 이때 그녀가 읊은 노래(『고사기』 수록)가 전해지는데, 사가미의 들판에서 화공(火攻)을 당했을 때도 자신을 걱정해 주었던 남편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녀가 바다에 들어간 지 7일 후, 그녀의 머리빗이 해변으로 떠내려왔고, 야마토타케루는 그 빗을 주워 능(陵)을 만들어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 빗을 유해 삼아 세워진 신사가 지바현(千葉県) 모바라시(茂原市)의 기쓰기 신사(橘樹神社)라는 전승이 있다.

지명 유래와 신앙

야마토타케루가 오토타치바나히메를 잃은 후, 아시가라(足柄) 고개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아아, 나의 아내여(吾妻はや, 아즈마하야)"라고 탄식하였다는 고사에서, 일본 동부 지역을 '아즈마'(吾妻/東国)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 기원 설화가 전해진다.

오토타치바나히메는 도쿄만을 중심으로 한 간토(関東) 지역에서 야마토타케루와 함께 신으로 숭배되었으며, 현재도 지바현, 가나가와현, 이바라키현 등지에 그녀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기쓰기 신사, 아즈마 신사, 오토타치바나히메 신사 등)가 다수 존재한다. 또한 에도 시대에는 중국의 항해 수호신 마조(媽祖) 및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 신앙과 융합되어 '천비(天妃)'라는 이름으로도 신앙되었다.

문헌별 차이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오토타치바나히메에 대해 기본적인 서사는 유사하나 세부 묘사에서 차이를 보인다. 『고사기』에서는 야마토타케루가 화공을 당했을 때 자신보다 아내를 먼저 걱정한 일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녀의 희생을 보다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반면 『일본서기』에서는 야마토타케루의 폭언이 바다의 신을 노하게 하였고, 그를 따르던 여인(오토타치바나히메)이 신하로서의 예를 다해 희생한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히타치국 풍토기』(常陸国風土記)에는 오토타치바나히메(또는 그 언니인 오오타치바나히메)가 야마토타케루와 함께 산과 바다의 수확을 겨루는 등 다른 지역 전승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적 실존 여부

야마토타케루와 오토타치바나히메의 역사적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신화와 전설의 영역에 속하는 인물로 간주된다. 다만 오토타치바나히메는 야마토타케루의 다른 부인들과 달리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비롯한 모든 주요 문헌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며, 자신을 모시는 신사와 지역 전승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어 기록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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