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2세(Otto II., 955년 ~ 983년 12월 7일)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3대 황제(재위: 973년 ~ 983년)이다. 별명은 적제(der Rote, 붉은 공작)로 알려져 있다. 오토 왕가(리우돌핑 왕조) 출신이며, 오토 1세(오토 대제)와 부르군트의 아델라이데의 아들이다.
생애
어린 시절과 즉위
955년 작센 공국에서 오토 1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 아델라이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957년 형들이 사망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었다. 961년 6세의 나이로 보름스에서 열린 귀족 회의에서 독일 왕국의 공동 통치자로 선출되었고, 아헨 대성당에서 쾰른 대주교 브루노에 의해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967년 12월 25일, 교황 요한 13세에 의해 공동 황제로 즉위하였다.
972년 비잔틴 제국과의 외교적 협상 끝에 비잔틴 황제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의 조카딸인 테오파누와 결혼하였다.
단독 통치
973년 5월 7일 오토 1세가 사망하자, 오토 2세는 18세의 나이로 단독 황제가 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오토 2세는 부친의 정책을 이어받아 황제 권력을 강화하고 남부 이탈리아로의 확장을 추진하였다.
내정 초기에는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2세(사촌)의 반란에 직면하였다. 하인리히 2세는 폴란드 공작 미에슈코 1세, 보헤미아 공작 볼레슬라프 2세와 연합하여 오토 2세에 대항했으나, 오토 2세는 이 반란을 진압하고 하인리히 2세를 투옥하였으며 바이에른 공국을 축소하고 케른텐 공국을 신설하였다.
974년부터는 덴마크 왕 하랄드 블라톤(하랄드 1세)의 반란을 진압하는 전쟁을 치렀다.
978년 서프랑크 왕 로테르가 로트링겐을 침공하여 아헨을 점령하자, 오토 2세는 반격하여 서프랑크를 공격하고 랭스 등을 점령하였으나 파리 포위 중 질병으로 인해 퇴각하였다. 980년 로테르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탈리아 원정과 패배
980년 오토 2세는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981년 로마에 도착하여 교황 베네딕토 7세를 복위시키고, 파비아에서 이탈리아 왕으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982년 남부 이탈리아에서 비잔틴 제국과 파티마 칼리파국의 무슬림 세력에 맞서 원정을 감행하였다. 초기에는 타란토를 포위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982년 7월 14일 크로토네 인근 스틸로 전투에서 무슬림 군대에 대패하였다. 이 전투는 당시 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많은 귀족과 황실 관리가 전사하였다.
슬라브족의 대반란과 최후
스틸로 전투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983년 엘베 강 동부의 폴라브 슬라브족(루티치 연맹)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제국은 엘베 강 동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하였으며, 슬라브족에 대한 기독교 선교 사업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983년 12월 7일, 오토 2세는 로마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하였다. 향년 28세였으며, 재위 기간은 약 10년이었다. 그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는데, 이는 그를 성 베드로 대성당에 묻힌 유일한 신성 로마 황제로 만든다.
가족
- 부친: 오토 1세(오토 대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 모친: 부르군트의 아델라이데
- 배우자: 테오파누(비잔틴 제국의 황녀)
- 자녀:
- 오토 3세(980~1002)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 조피아(975~1039) - 간더스하임 수녀원장
- 아델하이트(977~1044/1045) - 크베를린부르크 수녀원장
- 마틸다(979~1025) - 로트링겐 변경백 부인
평가
오토 2세는 부친의 업적을 계승하여 제국 중앙 권력을 강화하고 이탈리아로의 확장을 시도하였으나, 스틸로 전투의 패배와 슬라브족의 대반란으로 인해 제국의 동부 영토를 상실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요절은 3세에 불과했던 아들 오토 3세의 즉위로 이어져 제국에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