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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폰 게리케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 1602년 11월 30일 ~ 1686년 5월 21일)는 신성 로마 제국 마그데부르크 출신의 과학자, 발명가, 정치인이다. 진공, 대기압, 정전기 반발에 관한 실험적 연구 방법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게리케는 마그데부르크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학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헬름슈테트, 예나, 레이던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군사 공학을 공부했으며, 9개월간의 대여행(Grand Tour)으로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했다.

정치적으로는 1626년 마그데부르크 시의회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1631년 30년 전쟁 중 마그데부르크 약탈 사건 당시 도시가 파괴되어 개인 재산을 모두 잃었다. 이후 재건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646년 마그데부르크 시장(Burgomeister)으로 선출되었고, 1678년 은퇴할 때까지 약 40년간 그 직위를 유지했다. 그는 시장으로서 여러 유럽 궁정과 의회를 오가며 외교 임무를 수행했으며, 1654년 레겐스부르크의 국회에서 진공 실험을 시연하기도 했다.

과학적 업적으로는 1650년경 최초의 공기 펌프(진공 펌프)를 발명한 것이 꼽힌다. 그는 이 펌프를 이용해 용기 속에서 공기를 제거하는 진공 실험을 수행했으며, 진공과 대기압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1654년부터 1657년 사이에 수행된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으로, 두 개의 금속 반구를 맞붙여 내부 공기를 제거한 뒤 대기압으로 인해 반구가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 실험은 대기압의 힘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게리케는 대기압의 변화를 관측하는 기압계를 제작하여 날씨 예측에 응용했으며, 유황 구(硫黃球)를 문질러 전하를 발생시키는 초기 형태의 정전기 발생 장치를 만들고 정전기 반발 현상을 최초로 실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horror vacui)는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견해를 반박하고, 물질이 진공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유체의 압력에 의해 밀려난다는 점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1672년에 출판된 《마그데부르크의 새로운 진공 실험(Experimenta Nova Magdeburgica de Vacuo Spatio)》이 있다. 이 저서는 진공과 공간의 본질, 공기의 압력과 지구 대기, 우주적 역량 등에 대한 그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의 연구 성과는 로버트 보일 등 당대의 과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과학 혁명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1666년 게리케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에 의해 귀족 작위를 받아 성(姓)에 "폰(von)"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는 1681년 페스트 유행을 피해 함부르크로 이주했으며, 1686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마그데부르크로 운구되어 울리히 교회에 안장되었다. 독일의 오토 폰 게리케 대학(마그데부르크)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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