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 1882년 12월 10일 ~ 1945년 12월 22일)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과학 철학자, 사회학자, 정치경제학자이다. 본명은 오토 카를 빌헬름 노이라트(Otto Karl Wilhelm Neurath)이며, 20세기 과학철학과 시각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생애 노이라트는 빈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고, 1906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및 통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시 경제를 연구하였으며, 전후에는 독일 작센 주의 사회화 계획 수립에 참여하였고,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 시기에 중앙경제계획청을 운영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적색 빈(Red Vienna)' 시기에 사회민주당에 합류하였고, 주택 및 도시 계획 관련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1934년 오스트리아 내전 발발 당시 망명하여 네덜란드 헤이그로 피신하였고, 1940년 독일군의 로테르담 폭격 이후 영국으로 탈출하였다. 194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빈 학파와 과학철학 노이라트는 논리실증주의 운동의 주도적 인물로서, 빈 학파(Vienna Circle)의 핵심 멤버였다. 그는 빈 학파 선언문의 주요 저자였으며, 과학의 통일 운동(Unity of Science movement)과 국제 통일 과학 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는 물리주의(Physicalism)를 주창하였고, '프로토콜 명제(Protokollsatz, protocol statement)'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언어와 과학적 검증의 전체론적 성격을 비유한 '노이라트의 배(Neurath's boat)'라는 유명한 은유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바다 위에서 배를 고쳐 나가는 선원과 같다는 비유로, 모든 지식이 동시에 수정될 수 없으며 기존 지식을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되어야 함을 설명한다.
ISOTYPE과 시각 교육 노이라트는 국제적인 그림 문자 교육 체계인 ISOTYPE(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을 발명하였다. 이는 1920년대 중반 빈에서 '빈 도해 통계 방법(Vienna Method of Pictorial Statistics)'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며, 복잡한 사회·경제적 데이터를 간결하고 직관적인 아이콘으로 시각화하는 기법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게르트 아른츠(Gerd Arntz)와 마리 리데마이스터(Marie Reidemeister, 이후 마리 노이라트)와 협력하여 이 체계를 발전시켰다. 노이라트는 "말은 나누고, 그림은 통합한다(Words divide, pictures unite)"는 모토 아래, 이 시각 언어를 박물관 전시와 대중 교육에 접목하였다.
경제학 경제학 분야에서 노이라트는 화폐 경제 대신 실물 계산(in-kind accounting)에 기반한 경제 계획을 주장하였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시 경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화폐 가치가 아닌 물리적 단위로 직접 평가하는 경제 체제의 가능성을 역설하였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920년 유명한 논문 「사회주의 공동체에서의 경제 계산」을 통해 반론을 제기하였으며, 이는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 계산 논쟁'으로 이어졌다.
주요 저서 주요 저서로는 《Anti-Spengler》(1921), 《International Picture Language》(1936), 《Modern Man in the Making》(1939), 《Foundations of the Social Sciences》(1944) 등이 있다. 그의 과학철학 논문은 네덜란드 하를럼의 노르트홀란트 기록보관소(Noord-Hollands Archief)에 소장되어 있으며, 노이라트 부부의 ISOTYPE 컬렉션은 영국 레딩 대학교 타이포그래피·그래픽 커뮤니케이션 학과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