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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레코드

오케레코드는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전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음반 회사이다. 1933년, 일본 제국축음기상회(후일의 테이치쿠)의 경성지부장이었던 이철(李哲)이 '오케'라는 독자적인 이름으로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하면서 설립되었다. '오케'라는 명칭은 영어 'Okay'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며, 알파벳으로는 'Okeh'로 표기한다.

제국축음기주식회사와 제휴 관계에 있었으나 이철이 독자적으로 경영하였기 때문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음반회사로 평가된다. 이철이 경영을 담당하였고, 그의 매부인 김성흠이 기술을 담당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오케레코드는 콜럼비아레코드, 빅타레코드, 포리돌레코드, 태평레코드와 함께 5대 음반회사로 꼽혔다. 이 가운데 오케레코드는 가장 늦게 음반을 내기 시작했으나, 음반 발매 종수에서 콜럼비아레코드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고, 대중가요 부문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인기 가수와 노래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 고복수, 손목인, 이난영, 김정구, 남인수, 이화자, 장세정, 이인권, 조명암, 박향림 등이 오케레코드에서 활동하였다. 1935년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큰 흥행을 기록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이철은 오케레코드 소속 가수들로 구성된 공연단의 순회 공연에 주력하였고, 전쟁 지원을 위한 군국주의 음악도 오케를 통해 발매되었다. 1944년 이철이 사망하고 이듬해 태평양 전쟁 종전과 함께 일본 본사가 철수하면서 오케레코드는 문을 닫았다.

오케레코드는 한국 음반산업의 전설적 존재였기에 1948년에 같은 이름의 음반회사가 재설립되었다. 새로 설립된 오케레코드는 이전의 이철이 운영하던 오케레코드와 이름도 같고 음반상표도 유사하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회사이다. 부활한 오케레코드는 1948년 5월에 〈울어라 은방울〉과 〈세월은 간다〉를 발매하였으며, 송민도의 〈고향초〉, 박재홍과 옥두옥의 듀엣곡 〈눈물의 오리정〉, 남인수의 〈몽고의 밤〉 등이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발매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오케레코드라는 이름으로 〈서울부기〉, 〈서울의 거리〉, 〈청춘 하이킹〉, 〈자유부인〉 등의 음반이 발매되었으나, 이것이 1948년에 재설립된 오케레코드와 동일한 회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해체된 시기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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