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방(吳定邦, 1552~1625)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영언(英彦), 호는 퇴전당(退全堂)이다. 시호는 정무(貞武)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생애
오정방은 1552년 경기도 양성현(陽城縣)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승지에 추증된 오경운(吳慶雲)이며, 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오수천(吳壽千)이다. 작은아버지인 수군우후(水軍虞候) 오수억(吳壽億)에게 입양되었다.
1583년(선조 16년)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당시 이이(李珥)가 그를 인견하고 "참으로 영재를 얻었다"고 칭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사온서 주부, 흥덕현감, 훈련원 판관, 방원 만호 등의 관직을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총부 도사로 영흥 지방에서 의병 수천 명과 힘을 합쳐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후 부령부사, 정평부사를 지냈고, 동지중추부사 겸 부총관, 포도대장, 군기시 제조, 서북순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선조 37년)에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전라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 황해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를 적극 반대하다가 사직당하였다.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후 다시 포도대장에 등용되었으며,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발생하자 호가대장(扈駕大將)으로서 인조를 호종하여 공산성(公山城)까지 행차를 따랐다.
1625년(인조 3년) 11월 18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74세였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가족 관계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수미(申壽眉)의 딸이며, 아들로는 오사겸(吳士謙)이 있다. 손자로는 관찰사를 지낸 오숙(吳䎘), 진주목사를 지낸 오빈(吳䎙), 사헌부 지평을 지낸 오핵(吳翮) 등이 있다. 측실에게서 서자 오사눌(吳士訥)을 두었다.
관련 문화재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위치한 '안성 정무공오정방고택'은 1510년(중종 5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당 고택은 해주오씨의 세거지로서 오정방의 생애와 관련된 유적이다.
참고 자료
이 내용은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공신력 있는 백과사전 및 공개된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주요 참고 문헌으로는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국조인물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