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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응

오세응(吳世應, 1933년 4월 18일~2019년 12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호는 의남(意南)이며, 본관은 해주 오씨이다. 제8·9·10·11·12·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7선 의원을 지냈고, 제15대 전반기 국회부의장과 제2대 정무제1장관을 역임하였다.

1933년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현 안성시 양성면)에서 태어났다. 서울교동국민학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48회)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햄린 대학교에서 행정학 학사, 아메리칸 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계 입문 전에는 미국에서 재미 언론인(기자)으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18번)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경기 제4선거구(여주·광주·이천)에서 신민당 후보로 당선되었고,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는 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 후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9년 김영삼 체제 출범 후 신민당에 복당하였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으로 활동하며 신군부에 협력하였고,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기 성남시·광주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전두환 정부에서 정무제1장관을 지냈다.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되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는 성남시 을 선거구에서 평화민주당 이찬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성남시 중원구·분당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 6선 의원이 되었다. 제14대 국회에서는 전반기 문화공보위원장과 후반기 외무통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성남시 분당구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7선에 성공하였고, 같은 해 제15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당시 김수한 국회의장을 대신하여 본회의를 진행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성남시 분당구 을에 출마하였으나 4.94%의 득표율로 낙선하였고,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퇴임 후에는 사단법인 지방자치제도개선모임 상임대표로 활동하였으며, 2014년에는 회고록 《잘못된 정치, 49%는 국민책임》을 출판하였다. 2019년 12월 11일 숙환으로 86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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