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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정의 및 개요

오벨리스크(obelisk)는 네 개의 면을 가진 높고 가느다란 기둥 형태의 기념 건조물로,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피라미디온)으로 점점 가늘어지는 형태를 취한다. 한국어로는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한다. 고대 이집트어로는 '테케누(tekhenu)'라고 불렸으며, '오벨리스크'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어 '오벨리스코스(ὀβελίσκος)'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꼬치', '뾰족한 기둥'을 의미하는 '오벨로스(ὀβελός)'의 지소사이다.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건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주로 신전 입구에 한 쌍씩 세워졌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라(Ra)를 상징했으며, 태양 원반의 석화된 빛줄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대부분 아스완(Aswan)의 채석장에서 채취한 붉은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며, 하나의 돌덩어리(단일체, monolithic)로 깎아 만들어졌다. 몸체의 네 면에는 태양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헌사나 파라오의 업적을 기리는 상형문자가 새겨졌으며, 꼭대기는 금과 은의 합금인 호박금으로 씌워지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현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제12왕조의 세누스레트 1세(Senusret I, 재위 BC 1971~1928)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 세운 것으로, 높이 약 20.7m, 무게 약 120톤에 달한다. 제4왕조(BC 2613경~2494) 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대의 것은 현존하지 않는다. 하트솁수트(Hatshepsut) 여왕이 카르나크(Karnak)에 세운 오벨리스크의 아래쪽에는 채석장에서 거석을 깎아내는 데 7개월이 걸렸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로마 제국 시기의 이동

로마 제국이 이집트를 장악한 이후, 많은 오벨리스크가 이집트에서 로마로 옮겨졌다. 적어도 12개 이상의 오벨리스크가 로마 시로 운반되었으며,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보다 로마로 옮겨진 오벨리스크가 더 많다. 현존하는 고대 오벨리스크 중 가장 큰 것은 로마의 라테라노 오벨리스크(Lateran Obelisk)로, 높이 32.18m, 무게 약 455톤에 달한다. 이는 원래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재위 BC 1504~1450)가 카르나크에 세운 것이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에 있는 바티칸 오벨리스크는 높이 25.5m, 무게 약 331톤으로, 기원후 37년 칼리굴라(Caligula) 황제가 이집트에서 로마로 가져온 것이다.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의 명으로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이는 당대의 뛰어난 공학적 위업으로 기록되었다.

현대 도시로의 이전

19세기 후반, 이집트 정부는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나누어 미국과 영국에 각각 하나씩 기증하였다. 이 오벨리스크들은 '클레오파트라의 바늘(Cleopatra's Needle)'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역사적 관련은 없다. 하나는 뉴욕 센트럴파크에, 다른 하나는 런던 템스 강변에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들은 원래 BC 1500년경 투트모세 3세가 헬리오폴리스에 세운 것으로, 높이 21.2m, 무게 약 180톤이다.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룩소르 오벨리스크(Louxor Obelisk)는 1836년 루이 필리프 1세 시기에 세워졌다. 높이 23m, 무게 222톤으로, 원래 람세스 2세(Ramesses II)가 룩소르 신전에 세운 한 쌍 중 하나이다. 1830년 이집트의 부왕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한 것이다.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아흐메트 광장에는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Theodosius Obelisk)가 있다. 원래 투트모세 3세가 세운 것으로, 기원후 390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로 옮겨 경마장에 세웠다.

현대의 오벨리스크

현대에 세워진 대표적인 오벨리스크로는 미국 워싱턴 D.C.의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1884년 완공, 높이 169m)이 있다. 이 외에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벨리스크(1936년), 중국 베이징의 인민영웅기념비(195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모나스(1975년), 북한 평양의 주체사상탑(1982년) 등이 현대 오벨리스크의 예시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현대 오벨리스크는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고대 이집트의 단일체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기타 문명의 오벨리스크

고대 아시리아 문명에서도 오벨리스크 형태의 기념물이 발견된다. 대영박물관은 네 개의 아시리아 오벨리스크를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검은 오벨리스크(Black Obelisk)는 샬마네세르 3세(Shalmaneser III)가 세운 것으로, 이스라엘 왕 예후(Jehu)가 조공을 바치는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어 성경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대 누비아(이집트 제25왕조)에서도 이집트화된 오벨리스크가 건설되었으며, 페루의 차빈 데 우안타르(Chavín de Huántar)에서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텔로 오벨리스크(Tello Obelisk)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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