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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리

오므리(Omri, 히브리어: עָמְרִי)는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기록된 북이스라엘 왕국의 제6대 국왕이며, 오므리 왕조(Omride dynasty)의 시조이다. 재위 시기는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대표적인 연대로는 기원전 885년~기원전 874년(에드윈 R. 틸레), 기원전 884년~기원전 873년(게르손 갈릴), 기원전 876년~기원전 869년(윌리엄 F. 올브라이트) 등이 제시된다.

오므리는 본래 북이스라엘의 군사령관이었으며, 시므리가 왕 엘라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군대의 지지를 받아 시므리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또 다른 실력자 기낫의 아들 티브니가 왕위를 주장하면서 4년간의 내전이 발생하였고, 티브니가 사망한 후 오므리는 왕위를 공고히 하였다.

오므리는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세멜(Shemer)로부터 산을 구입하여 그 위에 성읍을 건축하였고, 원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Shomron)라 명명하였다. 사마리아는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또한 오므리는 두로의 왕 엣바알(Ethbaal)과 외교 관계를 맺고, 그의 아들 아합을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킴으로써 페니키아와의 동맹을 강화하였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오므리는 당대 금석문과 교차 검증이 가능한 최초의 이스라엘 국왕이다. 기원전 840년경 모압의 왕 메사가 세운 메사 석비(Mesha Stele, 모압 석비)에는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가 모압을 억압하고 메드바(Medeba) 땅을 점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아시리아의 샬마네세르 3세가 세운 검은 오벨리스크(Black Obelisk)에는 예후가 "오므리의 아들"로 언급되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의 혈통 관계보다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오므리 가문(Bit-Humri)"으로 지칭하는 아시리아식 표현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성경 열왕기상 16장 23~26절에 따르면, 오므리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는데 그 이전의 어떤 임금보다도 더 악한 짓을 하였다"고 평가된다. 이는 그가 여로보암 1세의 우상 숭배를 답습하고, 이후 아합과 이세벨을 통한 바알 신앙 도입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역사적·고고학적 관점에서 오므리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처음으로 완전히 조직된 강력한 지방 국가로 발전시킨 군주로 평가된다. 그의 치세 동안 사마리아 건설, 관료 조직 정비, 상비군(전차부대 포함) 편성, 주변국과의 외교 및 상업 관계 확장이 이루어졌다. 오므리 왕조는 그의 아들 아합, 손자 아하지야와 여호람으로 이어졌으며, 기원전 841년경 예후의 쿠데타로 종말을 맞았다. 오므리의 사망 원인은 자연사로 알려져 있으며, 사망지는 사마리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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