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델라피가(Ordelaffi)는 13세기부터 1504년까지 이탈리아 로마냐(Romagna) 저지대 일대를 지배했던 귀족 가문이다. 가문의 명칭은 이탈리아어 'Ordelaffi'의 한국어 음역이며, 대표적인 근거지로는 포를리(Forlì)가 있다.
기원
오르델라피 가문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문 스스로는 889년 이탈리아왕 베렌가리오 1세 휘하의 게르만 병사였던 '로르 데 라피아'(Lor de Laffia)의 혈통임을 주장했다. 이 인물은 포를리의 관리자로 임명되었으며, 910년 포를리 장악을 시도하다 라벤나로 추방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후계자들은 '로르델라피'(Lordelaffi), '오르델라프'(Ordelaf) 등으로 불리다가 이후 '오르델라피'(Ordelaffi)로 정착하였다.
로마냐 계
13세기에 테오발도 오르델라피가 포를리를 정복하여 기벨린 세력의 요새로 삼았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함께 라벤나와 파엔차를 포위했으며, 프리드리히 2세는 그를 포를리의 시뇨레(signore)로 공식 임명하였다.
이후 가문은 여러 차례 영지 확장과 쇠퇴를 반복하였다. 테오발도의 아들 스카르페타 오르델라피는 1302년 피렌체 공화국과 전쟁을 벌였고, 1303년 포를리의 소유권을 두고 포데스타 풀치에리 다 칼볼리와 다툰 끝에 상대방을 도시에서 추방시켰다. 그의 형제 프란체스코 1세 오르델라피는 체세나와 리미니를 지배하던 말라테스타 가문에 맞서 몬테펠트로 가문과 동맹을 맺었다.
1356년에는 프란체스코 2세 오르델라피가 교황 알보르노스 추기경의 로마냐 교황 대리 재임명으로 인해 세력을 잃었으며, 파엔차, 체세나, 베르티노로를 차례로 상실하고 포를리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1376년 시니발도 1세 오르델라피가 포를리 일대를 재정복했으나, 가문 내 독살 사건이 잇따르며 쇠퇴가 시작되었다.
1425년 테오발도 2세 사망 이후 포를리는 가톨릭 교회 교구의 소유로 넘어갔다. 1433년 안토니오 오르델라피가 시뇨리아 지위를 복위했으나, 교황 식스토 4세에 의해 추방되었다. 1503년 안토니오 마리아 오르델라피가 포를리를 잠시 되찾았지만, 그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오르델라피 가문은 단절되었다.
베네치아 계
로르 데 라피아의 또 다른 후손들은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이주하여, 성을 '오르델라프'(Ordelaf)를 거꾸로 뒤집은 '팔리에로'(Faliero) 또는 '팔레드로'(Faledro)로 바꾸었다. 팔리에로 계는 베네치아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12세기 초 비탈레 팔리에로(1084~1095년)와 오르델라포 팔리에로(1102~1117년) 등 두 명의 도제를 배출하였다. 1211년에는 크레타의 칸디아 공국에 정착한 최초의 베네치아 정착자 그룹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가문은 1355년 도제 마리노 팔리에로가 쿠데타를 시도하다 참수된 사건 이후 쇠퇴하여, 14세기 말 몰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의
오르델라피가는 중세 말기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이탈리아 반도 북부 로마냐 지역의 정치적 세력 구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문으로, 교황권,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주변 도시국가들 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활동한 역사적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