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승(吳大陞)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한자 표기는 吳大陞이다. 생몰년에 대해서는 일부 자료에서 1193년부터 1265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디지털화순문화대전에서는 생몰년을 "?~?"로 기재하여 정확한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이설이 존재한다.
오대승은 현(縣)의 향리 출신으로, 1260년(고려 원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으며, 동복현(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마쳤다. 그는 동복 오씨의 동복 입향조가 된 인물로, 동복 오씨의 중흥 시조로도 일컬어진다.
그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독상리석등(獨上里石燈)이 있다. 오대승은 관가의 길 남쪽에 돌을 쪼아 48개의 석등을 만들고 밤마다 불을 밝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후손들의 융성을 기원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석등은 현재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석등의 48개 구멍은 불교의 아미타불과 관련된 법장비구의 48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묘소는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재궁동 모후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2008년 묘로 통하는 계단과 언덕 보강 공사 및 비석이 세워졌다. 1670년에는 후손인 호조 판서 오정일(吳挺一)이 비문을 짓고 오시복(吳始復)이 글씨를 쓴 묘정비가 세워졌고, 1959년에는 오병석(吳炳晳)이 신도비명을 지어 신도비를 세웠다. 동복면 독상리에는 석등각(石燈閣)이 건립되어 시제 전날 밤 자손들이 불을 밝히며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계를 살펴보면, 할아버지는 동복 오씨의 시조인 동복군 오영(吳寧)이고, 아버지는 오중환(吳仲環)이며, 어머니는 동복인 화식보(和式甫)의 딸이다. 그의 후손으로는 아들 오광찰(吳光札, 대장군 역임), 손자 오선(吳璿, 첨의찬성사 역임)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오억령(吳億齡, 대사헌·형조판서), 오백령(吳百齡, 이조참판)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