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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니와 쓰나모토

오니니와 쓰나모토(일본어: 鬼庭 綱元, おににわ つなもと, 1549년 ~ 1640년 7월 13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에 걸쳐 활동한 무장(武將)이다. 후에 성을 바꾸어 모니와 쓰나모토(茂庭 綱元, もにわ つなもと)로도 알려져 있다. 센다이 번의 다테(伊達) 가문을 섬긴 중신으로,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를 보좌한 인물이다.

생애

오니니와 쓰나모토는 1549년(덴분 18년) 무쓰(陸奥)국 이다테군(伊達郡) 고야관(小屋館)의 성주였던 아버지 오니니와 요시나오(鬼庭良直)의 적남으로 태어났다. 가문의 시조는 야마시로국 야세(八瀬) 출신의 사토(斎藤) 씨 일족으로, 이다테군 모니와 촌(茂庭村)으로 이주한 뒤 전설상의 괴물인 야와타노오로치(八俣遠呂智)를 퇴치한 일을 계기로 '오니니와'(鬼庭, '귀신의 정원'이라는 뜻)라는 성을 자칭하게 되었다는 가계 전승이 전해진다.

1575년(덴쇼 3년) 아버지의 은거에 따라 가독을 상속받아 나가이군(長井郡) 가와이 성(川井城)의 성주가 되었다. 1585년(덴쇼 13년) 히토토리바시 전투(人取橋の戦い)에서 아버지 요시나오가 다테 마사무네를 피신시키기 위해 후위(殿軍)를 맡고 전사하자, 쓰나모토가 가문을 이어받았다.

쓰나모토는 다테 마사무네와 그의 중신 가타쿠라 가게쓰나(片倉景綱)의 신임을 두터이 받았으며, 행정 능력이 뛰어나 1586년(덴쇼 14년) 38세의 나이로 선배 가신들보다 앞서 봉행(奉行)에 임명되었다. 1588년에는 도메키 성(百目木城)의 수비를 맡았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다테 마사무네의 반역을 의심하자, 쓰나모토는 마사무네를 변호하기 위해 교토로 향했다. 이때 히데요시가 쓰나모토의 재능을 마음에 들어 하여 자신의 측실(側室)이었던 오타네(於種)를 그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이는 마사무네의 허락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마사무네의 분노를 사, 쓰나모토는 1595년에 가문을 떠나 도주하게 되었다. 이후 가사이·오사키 잇키(葛西大崎一揆)와 분로쿠의 역(文禄の役)에 마사무네의 명령에 따라 참전하였다.

마사무네의 서장자(庶長子) 다테 히데무네(伊達秀宗)가 이요국 우와지마 번(宇和島藩)으로 이봉될 때, 쓰나모토는 히데무네를 보좌하고 번정(藩政)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1600년에는 마사무네의 명령으로 우에스기(上杉) 영지의 유가와라 성(湯原城)을 공격하였다.

분로쿠의 역 당시 나고야(名護屋)에 머물던 시절, 히데요시가 '오니니와'(鬼庭)라는 성이 불길하다고 여겨 성을 '모니와'(茂庭)로 바꾸도록 명하였다. 이후 쓰나모토는 모니와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미야기현 구리하라시(栗原市)에 남아 있는 모니와정(茂庭町)은 마사무네의 강제 이봉 이후 쓰나모토의 영지가 되었던 땅이다.

평가

쓰나모토는 가타쿠라 가게쓰나, 다테 시게자네(伊達重実)와 함께 '다테 가문의 삼대 인물'(伊達三傑)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생애 말년에는 다테 가문의 가신 중에서 마사무네보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마사무네보다 오래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1640년(간에이 17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향년 92세로, 당시로서는 매우 장수한 편이었다.

한편, 오니니와 가문이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이었던 것과 관련하여, 히데요시가 쓰나모토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었고, 쓰나모토가 쌀가루를 물에 푼 것을 복용한다고 답하자 히데요시가 이를 '이와미탕'(石見湯)이라 이름 붙여 복용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가족 관계

  • 아버지: 오니니와 요시나오(鬼庭良直)
  • 이복 누나: 가타쿠라 기타(片倉喜多) - 가타쿠라 가게쓰나의 이복 누나
  • 아들: 모니와 요시모토(茂庭良元), 모니와 사네모토(茂庭実元)

참고 자료

  • 일본어 위키백과 '鬼庭綱元' 항목
  • Japanese Wiki Corpus 'Tsunamoto ONINIWA' 항목
  • 영어 위키백과 'Oniniwa Tsunamoto'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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