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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남 사건

오길남 사건은 1985년 대한민국 출신 경제학자 오길남(吳吉男, 1942년~ )이 아내 신숙자와 두 딸을 데리고 북한으로 월북했다가 이듬해 홀로 탈북한 이후,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억류된 사건을 가리킨다. 월북, 탈북, 북한에 의한 가족 억류라는 세 요소가 모두 포함된 사례로 알려져 있다.

배경

오길남은 1970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독(당시)으로 건너가 튀빙겐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브레멘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독일에서 한국인 유학생 신숙자와 결혼하여 두 딸(오혜원, 오규원)을 두었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던 그는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여 독일에 거주하였으나, 박사 학위 취득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북한 공작원의 포섭 대상이 되었다.

경과

1985년 8월부터 북한 측의 회유를 받은 오길남은 같은 해 11월 29일 가족과 함께 월북에 나서, 소련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1985년 12월 13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약속과 달리 그는 경제학자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구국의 소리' 등 대남 흑색선전 방송에서 '민영훈'이라는 가명으로 공작원 생활을 하였다.

1986년 11월,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로부터 독일 유학생 유인 공작 명령을 받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파견된 오길남은 카스트루프 국제공항 입국심사대에서 공항 직원에게 "Help me"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 탈북에 성공하였고, 이후 서독으로 건너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였다.

가족 억류 및 송환 시도

오길남의 탈북 이후 그의 아내 신숙자와 두 딸은 북한 요덕 제15호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오길남은 이후 수차례 북한에 가족 송환을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돌아오라'는 답변만 되풀이하였다. 1991년 1월에는 북한 측으로부터 가족 사진과 딸들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전달받았으나, 이는 회유 겸 협박의 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5월 22일, 오길남은 독일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자수한 뒤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후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근무하였다.

신숙자 사망 및 북한의 입장

2011년, 경상남도 통영시를 중심으로 '통영의 딸' 신숙자와 두 딸의 송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국제사회로 확산되었다. 이에 부담을 느낀 북한 정권은 2012년 5월 8일 유엔에 서한을 보내 신숙자가 1980년대부터 앓아온 간염으로 사망하였으며, 두 딸은 오길남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만남을 거부한다고 통보하였다. 오길남은 이에 대해 북한의 조작된 주장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숙자의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2008년경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망 일시와 경위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두 딸 오혜원, 오규원의 이후 생존 여부와 행방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윤이상·송두율 개입 논란

오길남은 귀국 후 저서와 인터뷰를 통해 작곡가 윤이상과 재독 학자 송두율이 자신의 월북을 권유하고, 탈북 후에는 재월북을 종용하며 가족 송환을 방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윤이상 측은 1992년 반박문 《오길남 사건과 나》를 통해 오길남의 가족 송환을 위해 오히려 노력하였으며, 해당 논란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였다. 2011년 윤이상의 아내 이수자는 오길남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2013년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하였다. 이 논란에 대해 오길남의 주장만 있을 뿐 이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는 부족한 상태이다.

대중매체

오길남은 1993년 수필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2011년 재출간본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를 출간하였다. 2018년에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출국》이 개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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