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레나 게오르기예브나 본네르(러시아어: Елена Георгиевна Боннер, 1923년 2월 15일 ~ 2011년 6월 18일)는 소련과 러시아의 인권 운동가이자 활동가이다. 핵물리학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아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옐레나 본네르는 1923년 2월 15일 투르크메니스탄 마리(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게보르크 알리하냔은 아르메니아인으로 소련 아르메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책임비서를 역임했으며, 어머니 루피 본네르는 유대인 출신의 공산주의 활동가였다. 1937년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아버지는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어머니도 체포되어 카자흐스탄 카라간다 인근의 굴라그에서 8년간 중노동 형벌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에 간호사로 지원 입대하여 두 차례 부상을 입었고, 1946년 상이군인으로 명예 제대하였다. 전후에는 레닌그라드 제1의학연구소(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파블로프 의과대학)에서 소아청소년과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0년 의과대학 동창인 이반 세묘노프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1965년 이혼하였다.
인권 운동
1964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계기로 인권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1970년 칼루가에서 항공기 납치 사건 재판을 참관하던 중 안드레이 사하로프를 처음 만났고, 1972년 그와 결혼하였다.
1975년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출국 금지로 참석하지 못하자, 옐레나 본네르가 남편을 대신하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였다. 1976년에는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설립에 참여하였다.
1980년 사하로프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후 고리키(현재 니즈니노브고로드)로 유배되자, 본네르는 모스크바와 고리키를 오가며 남편과 외부 세계의 연락을 담당하였으나 이후 본인도 고리키로 유배되었다. 유배 중 심장 질환이 악화되어 수술이 필요해지자, 사하로프는 아내의 해외 치료를 위해 단식 투쟁을 벌였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후 본네르의 해외 출국을 허용하였고, 같은 해 미국에서 관상동맥우회로이식술을 받았다. 1986년 12월 고르바초프의 전화 통화를 통해 사하로프와 본네르 부부의 유배 조치가 해제되어 모스크바로 귀환하였다.
사망 이후 활동과 말년
1989년 12월 14일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사망한 후, 모스크바에 안드레이 사하로프 재단과 사하로프 기록 보관소를 설립하고 러시아 및 세계 각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을 지속하였다.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소련 의회를 지지하였고,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에서는 보리스 옐친을 지지하였다. 1994년 제1차 체첸 전쟁에 반대하여 러시아 대통령 인권위원 자리에서 사퇴하였으며, 2010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에 참여하였다.
1991년 라프토 기념상, 2001년 유럽 의회의 로베르 쉬망 메달 등 다수의 국제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6월 1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향년 88세로 사망하였다.